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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가시도치의 회고록>. 가시도치가 회고록을 썼다고? 그렇다. 그것도 여느 가시도치가 아니다. 키방디라는 인간의 분신이었단다. 오늘로 마흔 두 살이 된 그 가시도치는 바오밥나무를 두고 자신이 어떻게 분신이 되었고, 그동안 일생을 보내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하소연을 하듯 회고록을 써내려갔다.
 
아프리카의 민간신앙에 따르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평생 어떤 동물을 '해로운 분신', 혹은 '평화의 분신'으로 거느리고 산다고 한다. 그래서 회고록을 쓴 가시도치 느굼바 또한 키방디라는 인간의 '해로운 분신'으로 함께 존재해온 것이다. 인간의 분신.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에게도 분신이 있을까? 나의 분신은 어떠한 동물일까?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면 내 분신은 '학' 쯤으로 이해해도 좋을까. 학창시절 진실게임 같은 것을 하면서 내게 곧잘 붙곤 했던 동물이 학이었으니 말이다. 학이 내 분신이 된 이유는 내 다리가 길고, 좀 얌전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흐흐. 그럼 학은 평화의 분신이겠지.
 
그런데 이 분신이 무슨 일을 했느냐 살펴보니 그리 썩 좋은 일이 아니다. 회고록을 쓴 이 느굼바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로운 분신답게 못된 짓을 일삼았다. 그런 모습을 본인 스스로 즐겨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모시는 키방디를 위해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흔아홉명을 죽이는 엄청난 일을 말이다. 그러나 아빠 키방디가 백 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키방디 역시 백 명을 죽이기 직전 죽음을 맞는다. 보통의 분신 같으면 주인이 이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함께 이 세상을 뜬다. 그런데 느굼바 녀석은 그러한 섭리를 과감히 거부해버렸다. 그리고 죽기 싫어 도망친 후 바오밥나무를 만나 하소연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느굼바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고,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흔아홉명을 죽인 해로운 분신이 늘어놓는 변명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다른 가시도치들처럼 무리지어 살지도 못하고 혼자 독수공방해야 했던 일생이 조금 불쌍하게도 느껴졌다. 게다가 처음에는 단지 주인의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그 살인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이 많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욕망과 증오, 질투 같은 것들에 자신이 이용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에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키방디의 죽음 이후 도망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괜히 바오밥나무에게 하소연 하면서 말이다.
 
<가시도치의 회고록>은 가시도치 느굼바의 이야기를 통해 한바탕 웃음과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사소한 욕심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분신에게 살인을 명령하는 키방디의 모습은 바로 인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거침없이 사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인간의 표상이다. 갈수록 삭막해져가고 사소한 시비에도 칼부림이 난무하는 세상이니 점점 더 해로운 분신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왕에 가시도치 느굼바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회고록을 쓴 것이라면 많은 이들에게 읽혀 평화의 분신을 많이 만들어내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피조물이고, 정상을 참작할 여지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지. 인간은 우리 삶을 힘겹게 한 주범이기 때문에, 인간이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호전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그 인간들 때문에 밀림 깊숙이 처박히게 됐기 때문에, 그들은 기나긴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말이야." (61면)
 
by 꽃다지, 2007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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