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도서]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저/김승욱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자신이 살리려고 애썼던 사람들의 줄을 이렇게 계속 왔다갔다하며 그들의 어깨를 잡고 이름을 불러

가장 잘 이겨낼 것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렸다. 죽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

그럼에도 결국 죽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죽음의 만찬에 참여할지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 라인 현장,

굶주리고 전염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전쟁 포로들.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포로들이 없는데...... 다시 100명을 추려내야한다.

주인공 외과의사 도리고의 한없이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번민과 갈등, 힘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쩔수없이 이렇게 해야만하는 절망의 구렁텅이가 전쟁이었다.

죽음의 선고 앞에서 선택된 백 명의 남자들은 욕설을 내뱉고 저주를 퍼붓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자신들과 함께 한 의사에게 감사와 위로의 포옹을 했다.

 

울었다. 아파서 나도 모르게 샘이 터졌다. 가장 잔인한 일이었다. 두 번 죽이는 일. 전쟁의 이중성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반드시 죽여야하며,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성이 말살되고 무시되는 일, 죽임을 당하거나 죽여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무의미한 제로섬 게임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가 실제로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에게 바치는 책,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다.

생사의 아슬아슬한 라인(선;線)이 계속 반복되는 일상이 되는 전쟁의 참혹함.

살아남기위해 끝까지 버텨내야한다. 언제까지란 기한은 없었다.

그들은 오롯이 일본 제국주의의 뻔뻔한 탐욕에 길들여져가는 노예일뿐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는 허상이다.

 

교회안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네게 축복이 깃들기를, 아가야~~

서점 천장에서 비스듬히 비치는 빛의 터널.... 그리고 그녀, 에이미.

늘 비가 와 음습하고 축축하며 더럽고 그들이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곳, 라인(선;線).

 

전혀 어울림 없는 다른 풍경들이 펼쳐지지만 그 모든 삶 속에서 진하게 베여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

고독과 외로움은 수시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허무함은 절대적인 행복은 없음을 말한다. 너무 깊이 각인된 사랑도 시간이 흘러 그 이름마저 아스라히 기억되지 못한 순간들이 온다. 단조로운 삶 속으로 편입된다.

라인(선;線)에 있는 포로들의 삶들은 기막힘의 연속이다.

'일을 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다음 망치질을 위한 힘을 축적하고, 또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서......'

죽을만한 날이었다. 그날이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한 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매일매일이 죽은만한 날이었다. 그들을 압박하던 유일한 의문, 그러니까 다음 차례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의 답이 이거였다. 죽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감사의 마음이 그들의 뱃속을 갉아먹었다. 굶주림과 두려움과 고독도 그들의 뱃속을 갉아먹었다.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그들은 '나'가 아니라 '우리'였다.

본질은 이것이다. 매일 상실감과 마주하며 하루하루가 죽음을 기다리는 날처럼 그들은 치열하지 않을 수 없고, 고독과 외로움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대신 끈끈한 유대감만이 그들을 살린다. 살아남아야 하니깐.

두렵고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임을 그들은 알고 있다. 왜 그를 돕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그가 친구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 싫어하면서도, 바보취급하면서도 그를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용기, 생존, 사랑, 이런 것들을 어떤 한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 이런 것을 갖고 있고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 중 한 명을 버리는 것은 곧 스스로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믿게 되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판 '전쟁과 사랑'편이라 말하지만, 나는 전쟁 속에서 사람들의 본질적인 심리에 대해

읽으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전후 전범 재판을 통해 전범들이 어떻게 이후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더 눈여겨본 것 같다. 여전히 그들은 사회의 기득권층이었다.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고, 그 시대적 상황은 어쩔 수 없었다는 말같지도 않은 논리를 펴며 오히려 전쟁을 미화했다.

비밀과 회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위조 신분증으로 타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불행한 삶에 위엄을 부여해주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착한 사람으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끼는 것은 나가무라 본인뿐이었다. 이것은 위선인가? 속죄인가? 죄책감 때문인가? 수치심 때문인가? 나의 변신은 의도적인가 무의식적인가? 거짓인가 진심인가?.......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전쟁의 기억이 자신을 그리 괴롭히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괴로울 뿐이었다.

전범이면서 그 비정했던 기억들이 괴롭지 않다는 것, 여전히 평범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 소름돋는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전범이란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다.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듯이.....

역사가 판단해줄거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은 모든 일에 대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을 때면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고,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은 몸속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는 그것일 뿐이었다. 그것이 워낙 강하게 펄떡거렸기 때문에 그들은 그 느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또 재빨리 술을 마셔야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자들이 만났다. 전쟁의 상흔들을 가슴에 꾹꾹 눌러담은 채....

그들이 기억하는 전쟁,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픈 기억들은 그들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어마어마한 일을 겪고 살아 돌아왔지만 사회 기득권도 아닌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소름돋는 전쟁의 기억을 상쇄시키기위해 날마다 술이 필요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피로감,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 전범도 포로들도 모두가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데.....

그 부담감이 시대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또다른 생존의 갈림길인 것 같아 많이 슬펐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Aslan

    울으셨군요. 저는 충격에 휩싸이고 분노를 하게 되는데 눈물은 안 났어요.
    전쟁이 끝난 이후의 사람들의 아픔과 방황도 담겨 있어서 무척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2018.02.19 02:4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해맑음이

      좀 많이 울었습니다. 마음이 그냥 아프더군요.
      전쟁은 무서우리만치 사람을 무참히 짓밟더군요.
      전후 전쟁포로도, 전범들의 참 녹록치않은 삶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2018.02.19 20:45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나중에 가드너가 그리도 말하던 그 생선 식당에 찾아갔지요. 그네들이. 거기서 정말 전우애가 물씬. 그네들만이 아는 그 마음 ㅠㅠ. 그런데 가드너가 도리고의 형, 톰의 아들이었다구라 ㅠㅠ

    2018.02.19 22: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해맑음이

      그렇지요. 식구가 달리 식구고, 한통속이 달리 한통속일까요^^
      (헷헷헷.. 쫌 비유가 그렇지요^^) 함께 고통을 겪어 본 자들만이 아는 슬픔과 힘겨움들...
      참 많이 느껴졌어요. 전쟁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그들 삶은 치열한 또다른 전쟁통이구요.
      가드너는 정말 반전이었어요. 아......

      2018.02.20 15:57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