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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도서] 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저/강주헌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오랜만에 단숨에 책을 읽었다.

8월 한달동안 한권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에 잡히지 않더니...

9월도 연휴가 끼었고, 마음이 붕붕~ 떠서 그랬던가...

이제야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나에게 일상으로 되돌아 옴은 어쩌면 책 읽는 시간의 그 흐름을 잡았다는 것일게다.

일상으로 돌아옴에 흐름을 잡아준 책 얀 마텔의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도 각인 된 책이었는데, 역시나 <베아트리스와 버질>도 대단한 책이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 여기서는 희곡이 들어있다.

무대에 올리게 되는 시나리오.

바로 <20세기 셔츠>란 제목의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의 이야기.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이야기 하기 위한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호스피테이터 성 쥘리앵의 전설>

책의 주인공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연관 검색어로 인용된 단테의 <신곡>.

그리고 20세기 최고의 잔혹성으로 떠오르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 학살.

이런 유기적인 관계의 흐름 위에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 화자는 필명을 쓰는 헨리란 유명작가와 의문의 독자가 보낸 희곡

시나리오에서부터 만남에까지 이어진다. 의문의 독자는 박제사로 헨리에게 도움을 구한다.

신이 습작한 글이 있는데 글의 느낌과 생각을 말해달라고 한다.

박제사의 글이 바로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란 기구한 운명에 처한 당나귀와 원숭이다.

희곡에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대화들이 담겨져있다.

그  대화들은 결코 느긋하지 않다. 그들은 배가 고팠고, 아팠고, 힘겨웠다.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셔츠'라는 나라의 등허리 지역이다.

이름과 지명 하나에도 우화적인 의미가 깃들어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앞날에 대한 희망보다 두려움의 복선이 깔린 듯해서 더 먹먹했다.

 

<베아트리스와 버질> 이야기과 박제사의 관계가 읽고 있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고문을 당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안전과 행복은 절대우위일 수 없는 환경에 처해져있다.

인간에 의한 고문의 잔혹성은 전쟁이 남기는 아픈 상처 이전에 인간이 어쩜 저렇게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규정짓는다. 그 잔인함은 비단 그 시대만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지금도 동물 학대란 이름으로 계속

자행되어지고 있으니깐..... 그리고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호스피테이 성 쥘리앵의 전설>에서

어릴적 그렇게 영민하고 잘났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쥘리앵이 어떻게 잔인한 동물 살인자가

되었는지 아무런 감정의 기복없이 차갑게 보이는 박제사의 이미지가 오브랩되어지는지... 섬뜸했다.

박제사의 작업실에 진열된 수많은 동물들의 두렵고 놀란 눈.

무엇보다 거기엔 슬프고 처량한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있었다. 뭔가 헨리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사람들이 박제사를 쉬쉬하며 피하는 이유가 있었다.

단지 헨리는 독자로서 이상하고 차갑고 괴기스러웠지만 박제사를 최대한 배려한게 아니었나싶다.

이 관심과 배려가 자기 몸에 칼을 들이대기까지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죽였던 그 소년의 광기가 되살아난 것일까? 아니면 쥘리앵이 살아돌아 온 것일까?

아무런 죄책감없이 그는 자신에 대해 두려워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거절한 작가를 찔렀다.

 

두 동물의 등장을 통해 역사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재도 그 잔인한 역사는 다른 덧씌워진 형태로 현재 진행형이다.

잔인한 인간은 그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건재하다는 것을 박제사를 통해 알게된다.

알려져야 되는 역사, 발가벗겨진 과거의 그 역사,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어진 그 역사가

너무 아프고 가슴 먹먹하다. 지금도 머릿 속에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나눈 이야기가 퍽이나 다정스레 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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