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풍경이 마음팍에 들어왔기에 잊지 못하는 그리움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랑과 동경으로 인한 그리움 때문에 떠난다.
곽재구 시인의 <우리가 사랑한 1초들> 산문집이다.
동방의 등불,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편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스런 詩들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고 싶어 그는 타고르의 고향, 인도 산티니케탄으로 향한다.
시인님의 용기가 부럽다. 그리고 그 사랑과 그리움은 진짜다.
살면서 때론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이런 용기와 배짱이라면 삶을 더 풍성하게 살지 않을까싶다.
좋아하면서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없는것처럼......
1년 5개월동안 시인은 산티니케탄 벵골 사람들과 함께한다.
삶의 중심에서 늘 마주치는 수많은 '릭샤왈라'(인력거꾼)들은 시인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다.
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하고, 타고르의 모국어 벵골어를 배운다.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환대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 이방인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갔으니깐.....
타고르의 고향, 시인에겐 얼마나 인상적이었을까?
시인이 오롯이 느낀 감정과 풍경들이 감정이입되듯 내 마음에 들어온다.
특히 시인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 한 산티니케탄의 반딧불이가 제일 보고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밤을 만들어줄까?
책을 읽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벵골어 몇 단어가 신기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참 예쁜 단어들이다.
따시뗄레, 당신에게 행운이~
발로, good~~
쫌빠 다다, 꽃 아저씨
해맑은 아이들이 시인 아저씨를 부를 때 '쫌빠다'라고 부른다.
꽃을 좋아하는 아저씨? 시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름 같다.
산티니케탄에서 살면서 설레도록 보고 싶고, 다시 마주하고 싶은 풍경과 사람들, 그 속에 뭉클하고도
가슴 아린 삶들도 있었다. 크와이의 벼룩시장에서 만난 종이배를 팔러 나온 아이는 시인에게 행복을
선물해주었다.
다사와 헤어져 돌아오는데 달빛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이는 어떤 인연으로 내게 이런 기쁨을 주는건지요? 처음 내게 종이배를 접어 건네주었고
그 종이배 위에서 내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지요.
타고르의 시보다도, 그 어떤 고통과 환희의 영감보다도 내 마음이 환해졌고 촉촉해졌습니다.
아이를 만나고 싶었으나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날 다 저물어 길 위에서 아이를 만나다니요?
아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다니요? 달빛을 보며 돌아오는 내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조금씩 흘렸습니다.
인도에서 머무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돈이 10루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디의 초상이 새겨진 이 조그만 지페 한 장이면 인도의 저잣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입니다. 문득 내가 신이라면 이 세상 저잣거리의 모든 물건 값을 10루피 이내로 정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0루피 지폐 몇 장만 있으면 밤기차를 타고 먼 도시로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낯선 거리의 시장에서 부침개를 먹거나 낡은 영화관에서 오래전에 상영이 끝난 영화를 볼 수 있겠지요.
산티니케탄에 머무는동안 나는 참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꽃들이 가득 피어난 길과 꽃향기로 뒤덮인 숲 그늘, 하얀 달빛들, 초롱한 눈망울의 호수, 어떤 크리스마스트리보다 아름다운 반딧불이들의 비상과 점멸, 바울(노래하는 집시)들의 노래, 모르는 내게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들, 잠시 길 위에 멈춰 서서 시를 쓸 때 노트 위에 떨어지던 키 큰 나무들의 화사한 꽃잎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기분 좋은 선물을 두 개나 받았습니다.
하나는 자전거를 탄 인도 여학생의 맨발이고 또 하나는 셔츠를 고르며 기뻐하던 아낙들의 얼굴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사장 아낙들의 하루 일당은 100루피입니다. 셔츠 한 장의 값이 얼만인지 나는 묻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옷값이 비싸다 해도 아낙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오늘 하루치나 그 이상의 품삯을 지불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산다는 것은 다르지 않은데, 산티니케탄의 벵골인들은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 했다.
10루피, 우리돈으로 250원.... 종이배를 판 아이의 10루피, 릭샤왈라의 10루피, 공사장 아낙의 100루피....
그들에게 10루피, 100루피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선물이 되는 그들 품삯 이상의 행복이 아닌가싶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1년을 훌쩍 넘어 생활했으니 그 풍경들마다 삶마다 그리움으로 남지 않았을까?!!!
소란스럽지도 번잡스럽지도 않고 느리게 삶을 살며 누리는 그들의 마음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 것 같다.
행복해지는 마음과 뭉클한 마음들이 교차했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
마음이 너무 따뜻해져서 계속 아껴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