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에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고, 가장 길게 왕위와 수명을 이어갔으며 굵직한 삶을 살다 간, 영조.
정치적으로 당파에 얽매이지않고 화합을 잘 이룬 훌륭한 군주라 말들 하지만,
그러나 이 왕에게도 어찌 아픔이 없었겠는가?
늦은 나이에 얻은 애지중지 잘 키운 하나뿐인 아들을 당신의 손으로 죽여야했으니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 아비 영조와 비운의 아들, 사도 세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사도>이다.
영화는 세자가 좁은 뒤주 속에 갇혀 허기와 기갈에 신음하던 여드레 동안 파노라마처럼 시간을 거꾸러
되돌린다. 영민했던 세자가 아비의 눈 밖에 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아비 영조는 300년을 이어나갈 종묘사직이 먼저였다. 그래서 더 다급했는지 모른다.
임금이 될 세자가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하기를....... 하지만
세자는 공부보다 칼 장난을 하고 개 그림을 그렸고, 무엇보다 자신이 왕이 되기에 부족함을 알았다.
아비의 소망을 알기에 공부를 하려하지만 아비는 칭찬과 격려보다 매섭게 그를 옭아맨다.
여기서부터 아비와 자식의 관계는 얽혔는지 모른다.
영화 말미에 영조는 뒤주에서 죽어가던 세자와 마지막 이야기를 나눈다.
실수할때마다 가슴을 졸였고,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 왕이 되지 못했다면 나도 죽었고, 내가 죽었으면 너도 없다는 고백은 이 나라를 다 얻은 군주이면서도 살면서 단 한번도 마음이 평안하지 못했던 왕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졌다. 이런 아비의 고뇌를 이해하리라고 노력했던 세자였지만 아비의 그 방식은
숨이 막혔다는 그 말들이 참 많이 아프게 다가왔다.
공부와 예법보다 사람이 먼저며 왕도 싫고 권력도 싫다는 세자의 말이 끝까지 머릿속에 남았다.
오직 바란것은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였음을 고백하는 세자.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수 밖에 없음을 한탄한 영조.
'나는 자식을 죽인 아비로 기록될 것이나, 너는 임금을 죽이려한 역적이 아니라 아비를 죽이려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운명이라 하기엔 그들은 너무 멀리 와버렸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닿았다.
그리고 영조는 죽은 아들에게 ‘사도(思悼)’, 즉 ‘애달프게 생각한다.’는 시호를 내렸다.
사도 세자의 죽음은 한 집안의 아비와 아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했음에 그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이 불통에 기름은 얹은것은 영조와 세자의 대화속에서 알 수 있듯이 지극히 정치적이었지 않았나싶다. 아울러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영화<사도>를 통해서 알 것 같다.
원칙대로 하되 그 원칙에 얽매여 "인(仁)"을 경시하지 않기를......
역사속에서 단 몇 줄로만 기록된 사도 세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 속에서 자유함을 얼마나 갈구했는지를알게 되니 숙연해졌다. 참 잘 만들어진 것 영화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