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내가 '다름'을 인정할 때부터 말이 통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말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통하는 시대에 살아왔다.
그 무언의 약속들이 결국 사회를 이분적으로 분열하게 만들었다.
불통의 시대, 지금 우리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국정농단)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불통이 소통이 되려면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편견을 다양하게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편견은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회 곳곳(전통, 제도와 관습)에 퍼져있다.
우리 사회에서 편견이란 이름으로 가장 많이 투영된 곳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싶다.
'장애'와 '정상'이란 확연히 차이나는 두 단어들이 오랫동안 여전히 폐부를 찌른다.
그동안 가져왔던 편견들이 이 두 단어들을 확연하게 구분지었다. 여전히 익숙치않은 불편한 단어들.
편견의 단어들은 전혀 다른 것인데도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다.
꼬리표처럼 항상 같이 붙어다니는 단어였으니깐.....
'장애&정상' 이제 함께 끌어안는 단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를 읽었다. 5살 터울인 남매, 필리프와 안의 이야기다.
안이 지적장애인 오빠 필리프에 대한 이야기를 2인칭 '너' 화법으로 격한 감정에 이끌리지않고 서술하고 있다. 7살이 되어서 오빠의 장애를 알게 된다. 언제나 자신에게 영웅이었던 오빠였건만 오빠는 이제 자신이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며 보살펴야 될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집 안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남은 가족들에겐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않든 짐이라는 것을..... 특히 가족 안에서도 '장애와 정상'은 더 큰 마음의 부담일 것이다.
책에서 나는 책을 쓴 저자 안의 이야기에 마음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장애를 가진 오빠와 달리 '정상'이기에 짊어져야 할 버거운 짐들,
엄마가 나보더 널 더 보살피는 것이 정상이었고, 아빠가 내가 뛰어나길 바라는 것도 정상이었고, 내가 뭐든 이해해야 하는 것도 정상이었고, 내가 뭐든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정상이었고, 내겐 실수 할 권리가 없는 것도 정상이었어. 난 정상이니까. 정상. 정상. 정상. 장애인.
장애인 오빠의 여동생인 건 재미없는 일이야....
안의 말들을 통해 장애 속에서 정상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장애만큼이나 힘겹고 오히려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장애와 정상을 도드라지게 구분하지 않는 자연스레 다름을 인정하는 보통의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됨을 느꼈다. '정상이라는 이 단어, 장애라는 말보다 더 어려워' 말이 많이 공감되었다.
바로 오빠 네 덕분에 나는 쓸모있는 사람인거야. 네 덕분에 모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 내 삶도
의미가 있는 거야. 너를 지키고 돌보잖아. 나는 오래전에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 비록 한결같이 그런 마음이란 쉽지 않지만 너를 원망한 적은 없어. 혹시 그랬다면 아주 조금일 거고. 가장 원망스러운 대상은 네가 아니야. 날개가 꺾인 것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거든. 네가 날고 싶어했다는 것도. 넌 내 오빠야.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하고 하나뿐인 내 오빠. 난 누군가를 찾는 것을 접었어. 다른 정상인을 너보다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어. 고마워요. 예수님. 나는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법을 배웠어. 혹여 누가 널 아프게 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야수로 돌변할거야. 언제든 네 주변의 위험 요소를 탐색할거야. 준비 완료야.
장애인 오빠의 동생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해야했던 삶의 편견들....
그러나 그 편견은 장애인 오빠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장애인 오빠와 함께 하면서 느낀 삶의 소중함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새삼 보통의 삶, 평범한 삶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주어진 내 삶을 잘 살아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