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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속죄의 저편

[도서] 죄와 속죄의 저편

장 아메리 저/안미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선호하는 출판사가 하나 정도는 있다. 드미트리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기회를 빌려서 나열해 보자면.


앨피, 돌베개, 삼천리, 까치, 한길사, 문학동네, 갈무리, 한겨레출판


대충 이 정도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바로 도서출판 '길'. 무한도전에 나오는 그 길 아니므니다. 출판사 길입니다. 그렇다고 길에서 나온 책을 본 적은 없다. 다만, '프론티어 21' 시리즈로 나오는 책의 저자가 워낙 화려한지라, 시간 날 때 정독해 봐야지, 정도의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다. 어느 정도로 저자가 화려하냐면.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베네딕트 앤더슨, 조반니 아리기, 테리 이글턴, 알랭 바디우...


아, 그러고 보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는 사놓고 2년이 지났건만, 서문조차 읽지 못했구나. 반성하자.


어쨌든 길 출판사에서 낸 책으로는 처음으로 읽은 게 바로 『죄와 속죄의 저편』이다. 저자는 장 아메리.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무작정 길에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뽑은 책이다. 책 날개에 적힌 저자 설명을 적당히 추려 옮기자면.


장 아메리 (1912~1878). 오스트리아 빈 태생으로 유대인 아버지와 가톨릭 교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오스트리아가 제3제국에 합병되자 벨기에로 망명. 1940년 프랑스에서 체포되어 수용, 도주하여 반나치 운동을 전개하던 중 다시 체포. 이후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베르겐벨젠을 전전하며 수감 생활. 연합군 승리로 해방된 뒤 장 아메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 1966년 '고문'을 발표하며 아우슈비츠를 이야기하기 시작함. 1976년 자살 시도.1878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죄와 속죄의 저편』은 아우슈비츠에 관한 기록이다. 한 개인이 세계사 속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장 아메리는 이 책의 개정판을 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과 다를 바 없는 죽음을 맞이했으니.


아우슈비츠를 넘지 않고는 인류에 미래도, 희망도 없다. 이를 두고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는 계몽의 속성 자체에 비극이 내재했다고 분석했고, 아렌트는 인류에 편재하는 악을 끄집어냈다. 장 아메리는 이러한 분석을 비웃는다. 『죄와 속죄의 저편』은 섣불리 아우슈비츠를 정리하고 과거와 화해하려는 시도를 조소하며 제3제국에 향한 적대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저자는 자신의 태도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독설을 멈추지 않는다. 아우슈비츠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며,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천착하는 태도, 왠지 쿨하지 않아 보이는데 이런 책을 굳이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우슈비츠는 종결된 사건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경제 불황을 보면서 전체주의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어쨌거나 장 아메리의 필력은 대단한데, 드미트리가 그의 에세이에 담긴 요소를 분석하기보다는 저자의 말을 옮기는 게 적절해 보인다. 그러니 리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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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말이 육신이 되고, 육신이 된 말이 결국은 어떻게 층층이 쌓인 시체가 되는지를 목격했다. 그곳에서는 다시 한 번 많은 사람을 위해 공중에 무덤을 파는 불장난을 하게 될 것이다.  (11쪽)


계몽은 해명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 작은 책이 인쇄되었을 때 나는 해명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결코 해명되지 않기를 바란다. 해명이란 우리가 역사적인 서류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의 해결, 곧 합의이다. 내 책은 바로 이것을 막는 것에 기여할 것이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어떤 갈등도 해소되지 않았으며, 어떤 내면화하기도 단순한 기억이 되지 않았다.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일어났던 것을 단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는 저항한다. 나의 과거에 대해, 역사에 대해, 불가해한 것을 역사적으로 냉동시켜 버리고 그렇게 해서 화가 치밀 정도로 왜곡시키는 현재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어쩌면 1964년에 치유될 수 있었던 상처가 다시금 곪아터지고 있다. 감정적이라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계몽에 감정이 없어야 한다고 어디에 적혀 있나? 내게는 오히려 그 정반대가 진실해 보인다. (13쪽)


합리적이고 분석적 사고는 수용소에서, 특히나 아우슈비츠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곧바로 자기파괴라는 비극적 변증법을 이어졌다. (36쪽)


수용소에서는 총체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신은 결정권이 없었다. (중략)

지혜라는 말이 세상에 관한 긍정적인 지식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지혜로워지지 않았다. (중략) 정신적인 차원의 정의가 심오한 깊이라면, 우리는 수용소에서 '더 깊어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아우슈비츠에서 더 선해지지도, 더 인간적이지도, 인간에 대해 더 호의적이고 윤리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주변적인 이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탈인간화된 사람의 행동이나 범행을 보면서, 인간의 타고난 존엄에 관한 생각에 의구심을 품지 않은 채 그 사람을 쳐다볼 수 없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용소에서 지냈던 사실은 정신적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확고부동한 확실함을 얻었는데, 정신은 하나의 유희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하면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유희하는 인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52~54쪽)


첫 번째 구타와 함께 세상에 대한 이 같은 신뢰가 무너진다. 내가 세상에서 신체적으로는 반대하지만, 경계로서의 내 피부의 표면에 접촉하지 않는 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은 그 첫 번째 구타로 내게 자신의 육체성을 강요한다. 그는 내게 접촉함으로써 나를 파멸시킨다. 그것은 강간, 곧 두 당사자 중 한 사람의 동의가 없는 성행위와 같은 것이다. (중략) 그러나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우리의 신체를 제압하는 것은 결국 완전한 신체적 절명 행위가 된다. (71~72쪽)


고통이 어떠한지는 이미 언어적 소통의 한계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아마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고문당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죽음의 예식이다. (80쪽)


고문에 시달렸던 사람은 이 세상을 더 이상 고향처럼 느낄 수 없다. 절멸의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는 첫 번째 구타에서, 그러나 전체 범위에서는 결국 고문 속에서 무너진 세계에 관한 신뢰는 다시 얻어지지 않는다. 이웃을 적대자로 경험했다는 것은 고문당한 사람 속에 경악으로 굳어진 채 남아 있다. (91쪽)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임시적인 대답을 해도 도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더 많은 고향이 필요하다고. 왜냐하면 움직이는 고향이나 적어도 대체 고향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100~101쪽)


나는 나이 든 장군이 아니다. 나는 민족의 위대함에 대해 꿈꾸지 않으며 내 갖고 앨범에서 군인이나 국가 고위 공직자를 찾지도 않는다. 나는 또한 활쏘기 축제나 민요나 민속 의상 축제에 심한 거부감이 있으며, 독일에서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짐승 같은 지식인이라 불렀던 바로 그 사람이며, 해체적인 경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한 실향자이기 때문에 고향의 가치를 고백하려 시도하고, 고향과 조국의 날카로운 구분을 거부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결국은 하나인 이 두가지가 없이는 잘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국이 있는 사람은 말할 것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국가 단위를 구성하는 사회 구성물 속에서 집이 없다는 것은 고향도 없다고 말이다. (118~119쪽)


한쪽 진영에 원한이 계속해서 남아 있고 그것을 통해 다른 진영의 사람들에게 자기불신을 일으킨다면, 오로지 우리 원한의 박차에 찔린 채 독일 민족은 자기 민족 역사의 일부를 시간의 흐름에 맡겨 정상화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156~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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