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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갑니다, 편의점

[도서] 매일 갑니다, 편의점

봉달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https://blog.naver.com/mate3416/221979309677

 

 

무릇 편의점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호텔경영을 하고 싶었으나 경희대나 세종대에 입학하지 못했고 미국의 코넬대학에 유학할 수 없었다. 아니다. 솔직해지자. 다시 공부하거나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취업한 선배들이 가끔 학교에 찾아왔다. 옷과 신발은 좋아졌는데 낯빛과 기운이 낡아보였다. 취업해 서울로 간 선배가 출근길을 이야기해줬다. 꾹꾹 눌러 담긴 지하철에 선 채 일터로 옮겨지고 있었는데 옆자리 여자의 하이힐이 발가락을 찍었단다. 여자는 발을 옮겨주고 싶어 했지만 다리를 빼낼 공간이 없었다. 도착지까지 가해자도 피해자도 꼼짝할 수 없었다. 여름이었고 선배는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피가 굳어 있었더랬다.

   슬슬 직장인이 되어야 할 때였다, 나도.

 

   스물넷 여름, 지방직 공무원 신분이 되었다. 두 달 뒤면 만 14년을 채운다.

   여행길에 걸려있는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깨끗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1620분처럼 24시간제로 시각을 표기한다. 축제나 행사가 있는 곳에서는 컨텐츠보다 그 곳 공무원들이 얼마나 어려울까를 먼저 떠올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는 순간 뭉클한 역사에 가슴 찡했으나 의전 담당자들이 북한 땅 위의 시뮬레이션을 어떻게 돌렸을지, 북쪽의 담당자들과 얼마나 많이 수정하고 타진하며 고생스러웠을지 아연했다. 외숙모네 놀러 가면 빨리 점심 해먹여야지. 쟤넨 12시에 점심 먹어야 돼.” 소리를 듣는다. 반박하고 싶지만 12시가 되면 기계적으로 밥을 먹기는 한다.

   첫 발령은 자치행정과였다. 그 다음 면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면서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하다못해 면서기라도에서는 당황했다. 면서기는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8급 공무원을 뜻하지만 그냥 면 직원들을 총칭한다. 5급 면장님도 면서기다.

   도시에서 자란 9급 말단 어린 직원이 면 도라꾸(트럭)를 타고 마을로 출장을 가면 이장님들께서 집을 주겠다, 땅뙈기를 주겠다, 벼는 아느냐, 감은 아느냐 예뻐해 주셨다. 정미소를 하시는 이장님이 김외과 앞으로 나와. 혼자 나와. 차 가져와.” 은밀히 속삭이시면 따라나가 햅쌀 한 봉지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저 먼 시골 면서기 같지만 내가 있던 곳은 아파트 밀집지이자 상업지여서 자연마을은 몇 곳 없었고 젊은 이장님들이 많았다. 선배 면서기들은 한나절씩 출장을 다니던 진정한 면서기 시절을 그리워했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면서기여서 좋았다. 열심히 했다.

   다시 시청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업무들을 맡았다. 13년이 지났고 서기가 아닌 주사가 되어 면사무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이장님이신 몇 분은 여전히 오냐오냐, 그려그려하시고 나는 그게 좋다.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아깝다. 다시 좋아서 좋다.

 

 

   봉달호 씨는 호빵기와 탄산수로 계절을 안다. 300여 종의 음료수 중 데미소다 애플 캔이 몇 번째 열과 행에 놓여있는지 안다. 새로 만난 쿠키에게 초코칩 옆자리를 권한다. 2,233개 품목의 물건들에게 매일 묻는다. “안녕, 잘 있었어? 거기서 있을 만해?”

   봉달호 씨는 편의점을 운영한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며,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정리하다, 창고에서 라면 상자를 치우다 말고 편의점 이야기를 썼다. 영수증 쪼가리에, 박스 뒷면에, 작은 휴대폰 창에 글을 쓰며 살아있음을 자각했다. ‘열댓 평짜리 편의점 여기저기에 휘갈긴 내 청춘의 곰보 자국 같은 흔적들이라 소개한다.

   쉽고 밝게 읽었지만 어렵게 쓰인 글임을 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여러 번 고민하고 이겨내지 않았으면 드러낼 수 없는 이야기들임을 안다. 훌쩍 읽어넘길 수 있는 이 책을 빚어낸 봉달호 씨의 사연 많았을 세월을 직업인으로서 응원하고 존중한다. 모든 사람들이 떳떳할 수 있는 직업인으로 살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세월이 자랑일 수 있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희망으로 직업을 탐색하고 설렘으로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세상이기를 간절히.

   훌쩍 흘러가버린 나의 십수년 공직자 생활은 어떠했던가. 더 빠르게 흘러갈 앞으로의 시절은 어떠하려나. 직업에 대하여, 직업인으로 살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하여 어쩌면 조금은 과하게 골똘해진 독서였다는 후감을 남긴다.

 

   아, 봉달호 씨의 직업병은 이런 것이다.

   “지하철에 탄다. 맞은편에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다. 패딩을 입은 사람, 코트를 입은 사람, 붉은 옷을 입은 사람,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머리가 긴 사람, 머리가 짧은 사람,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뒤죽박죽 앉아 있는 모습이 꽤나 눈에 거슬린다. 종류별(?)로 구별해서 다시 진열(?)하고 싶어진다. 이게 다 직업병이다.”


https://blog.naver.com/mate3416/221979309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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