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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자세

[도서] 이완의 자세

김유담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https://blog.naver.com/mate3416/222311853557

< 책방 하고 싶은 면서기 >

 

에포케epoche에 관한 논픽션인 줄 알고 골랐는데… 소설이다. 아무래도 어느 지면의 신간소개 코너에서 같이 읽어 헷갈렸던 듯.

살다보면 똘똘치 못함이 출산하는 즐거움이 있는데 이게 또 그 예상치 못한 맛이 꽤 쏠쏠하다. 쏠쏠하니까 너무 많이 똘똘해지는 건 자제하기로.

 

토요일 아침, 모든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한 뒤 깨끗한 식탁에 앉아 김유담 작가의 『이완의 자세』를 읽었다. 손에 알맞은 판형에 하늘색 파란색 표지까지. 흐뭇.

‘나’의 엄마 오혜자는 (우린 그녀를 오혜린으로 불러들려야 한다) 때밀이 아줌마다. 잠깐. 혹시 지금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다시 집어넣으시라. 홀딱 망하고 남은 전 재산으로 때밀이 자리를 사 여탕 탈의실에서 어린 딸과 숙식을 한 이 엄마는 ‘불구하고’의 때밀이 아줌마다. 남편 없는 빈털터리 때밀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쁘고 날씬하다. 작업복(빨간 브라 빨간 팬티)을 입고 때를 미는 그녀의 몸은 벌거벗은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로 근성으로 열심히 때 밀고 마사지해 번 돈으로 재개발이 예정된 아파트도 샀고, 탈의실 정기장판에서 재우고 탈의실 평상에서 TV 보이며 키운 딸도 대학까지 잘 보냈다. ‘불구하고’였는데도 말이지. (울컥한 이야기, ‘불과’에 관해서는 직접 읽어보시라)

 

소설을 모두 읽고, 조금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책 표지를 다시 보았다. 어째서 작가는 제목을 ‘이완의 자세’로 지었을까? 이완은, 자세는 무슨 이유로 다른 단어들을 제치고 선택된 걸까? 왜 한 번에 딱 모르겠지? 작가가 힘주어 쓴 무엇을 내가 그냥 흘려 읽었나? 대체 왜, 이완의 자세인거지?

 

어른으로 자라가는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느라 때밀이 침대에 작은 몸을 뉘여 등짝을 맞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온몸이 시뻘게지도록 엄마의 연습용 몸이 되어야 했던 어린 ‘나’를 그제야 떠올렸다. 어른이 되었고 목욕탕을 벗어났는데도 누군가의 몸이 닿으면 얼음. 우스꽝스러운 모습,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굳어버리는 ‘나’를 땡! 해주기는 쉽지가 않다. 터치는 금지니까.

그렇게 여지없이 경직해버리는 ‘나’를 보고 있자면 어쩐지 ‘피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눈에 잘 보이는 안내문을 하나 들려주고 싶다. ‘지금은 난을 피하는 중입니다. 멀리서 다시 불러주세요.’ 궁서체로 단정하게.

그런 소설이 있다. 큰 울림이나 긴 공명, 날카로운 문제 제기나 정신 번쩍 드는 도끼질이 없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소설. 책꽂이 어디쯤에 꽂아놓고 어느 날은 아침 체조하며 힐끗, 어느 날은 침대 발치에 앉아 멍하게, 어느 날은 금요일 저녁이니까 와인과 다시 읽으려 반짝이며 눈을 맞출 책. 그런 책들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불구’지만 ‘불과’일 수 없는 책들, 흐뭇하고 기특한 책들.

쾌적한 토요일 아침. 좋은 소설을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었다. 옛날옛날 어릴 때, 이모 손잡고 목욕탕에 끌려가 딸기우유 얻어먹던 그 옛날옛날을 애틋해하며.

 

 


https://blog.naver.com/mate3416/22231185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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