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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도서]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https://blog.naver.com/mate3416/222318941332

< 책방 하고 싶은 면서기 >

 

  카카오가 얄밉다.

  생일을 앞둔 친구들을 굳이 추려 알려주고, 축하의 마음을 어서 보내시라 이름 옆에 선물하기까지. 세심하기도 하지. (심지어 받고 싶은 선물을 올리기도!).

  별로인데, 돈 냄새 끈적한 상냥이 정말 별로인데, 생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고, 만 천하에 공개된 생일을 나만 못 본 척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는 게 영 찝찝하고. 헌데 이 오두방정 돌아가는 세상에 생일선물 때문에 시간을 내고 직접 몸을 움직인다는 게, 그게 좀처럼 실행이 어려운 일인지라 얄밉지만 그냥 선물하기터치.

  아무리 속전속결 해결이 가능해도 선물하기는 꽤 신경 쓰이는 일이다. 취향이나 필요를 저격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모르겠다. 아무튼 내 노동의 대가가 빅테크의 돈벌이 비료가 된 듯한 기분은 정말 별로다.

 

  얼마 전, 점심시간 산책을 하다 면사무소 가까운 곳에서 이제 막 문을 연 작은 책방을 발견했다. 얼마나 반갑고 신기하던지. 실례인 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책방 내실 생각을 하셨어요?” 정말 궁금해서, 내가 너무 하고 싶어서, 그런데 나는 용기가 없어서 정말 정말 묻고 싶었다. “그러게요. 그냥 믿고 냈어요. 책 좋아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믿고 그냥.”

 

  책방을 발견한 후로는 카카오를 나의 비료로 쓰고 있다. 생일을 맞거나 좋을 일이 있거나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료를 책방으로 불러 한껏 폼을 잡는다. “맘에 드는 걸로 골라봐.”

  사실 책 선물은 선물하기의 최고 난이도다. 일단 그이가 책을 읽는 사람일 가능성이 희박하고, 혹 읽어볼 마음이 있다 해도 모래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막막한 책 고르기. 만약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이미 읽었을 수도 있고 분야나 작가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니 이래저래 책 고르기 참 어렵다.

  하지만 책 선물만이 갖는 뭔가가 있다. 일단 구입단가가 괜찮다. (1만 몇 천원으로 이만큼 폼 나는 선물이 가능하겠는가.) 또 책이라는 물건은 화폐가치와 등가가 아니라는 믿음(희망?), 왠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무엇이 담긴 것 같은 경외감, 이것은 속물들의 아이템이 아니라는 젠 체, 하다못해 읽거나 말거나 집 어디에 세워놓는 것만으로도 느낌 있는 오브제.

  책방으로 불려온 이들은 예상치 못한 초대에 조금 들뜬다. “나 요즘 진짜 소설 너무 읽고 싶었어. 다 잊고 푹 빠지고 싶었어.” “저 태교여행 못 가서 속상했는데, ! 사진 봐. 이걸로 할래요!” “나 오늘 커피 쿠폰 100장 받았잖아. 책 이거 신박하다. 근데 나 뭐 읽어야 돼?” “여기 책방이 있었어? 그냥 들어와만 있어도 좋다 야.”

  반응들이 다 좋다. 물론 내 앞에서 싫은 티를 낼 수 없어서겠지만 이제 막 짜 넣은 서가의 나무 향과 새 책 냄새, 반듯한 책등과 아름다운 표지로 가지런히 놓인 책들, 마음 놓이는 조명과 절묘한 재즈,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의 미소가 채우는 이 작은 공간에 들어서면 내 소중한 이들의 날 섰던 눈빛과 마음이 잠시 편안해진다. 부드러운 눈매로, 힘 뺀 손가락으로, 천천한 걸음으로 책을 살핀다. 보기 좋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는 이십 년간 편집자로 살아온 이수은 저자가 합정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불현 듯 깨달음을 얻어 집필한 책이다.

  예상불가 대응불가인 삶의 순간가슴 속에 울분이 차오를 때, 사표 쓰기 전에, 통장 잔고가 바닥났을 때, 이 길이 아닌 것 같을 때, 남 욕하고 싶을 때, 안 망하는 연애를 하고 싶을 때, 싸우러 가기 전에, 가출 계획 중일 때…―마다 시급히 필요한 책들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 책(고도를 기다리며)이라면 남은 생애 동안 수십 번은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지금 가고 있는 길에 회의가 밀려올 때, 그런데 다른 어느 방향을 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큰 결단이 찾아올 때까지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 - 87

 

  • 어느 모퉁이에서,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보자. - 101

 

  처방전을 받아든 기분이다. 내공 탄탄한 의사가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 피실험자가 되어 임상실험을 거친 결과이니 믿을만하다.

  뭔지 너무 알겠는 상황들에 고개 끄덕이며, 낄낄 거리며 금세 읽었다. 읽어본 책은 그렇지, 그렇지.’ 반갑게 확신하며, 읽지 않은 책은 이건 필요하겠어.’ 결의를 다지며 처방된 52권의 책을 소중히 새겨두었다.

  '이런 실례는 대환영이라는 장강명 작가의 말에 대공감하며 독서후담 끝.

 

 

https://blog.naver.com/mate3416/22231894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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