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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도서]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저/신승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과학서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한 책. 뱀장어에 관한 책을 읽었다.

 

'문학과 과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담아낸 스벤손은 독자들이 물고기라는 생명체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물고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결국 삶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저자가 전하는 물고기의 신비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게 되는 질문을 상기시킨다. -월스트리트 저널'

 

 

소설인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과학철학과 인문학 책이자 에세이였다. 뱀장어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어릴적 부엌의 큰 들솥 안에서 들려오는 그 힘찬 타탁타타탁 소리가 귓가에서 어린다. 어릴 때 나는 투명한 비닐 봉투에 담겨 탁탁 꼬리를 휘젓던 뱀장어의 눈을 감히 마주칠 생각을 못했었다. 까만 단추같은 그 눈을 들여다보았더라면, 그 까만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지 바라보았더라면 나는 뱀장어에게 좀 더 인간적인 호기심을 느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더라도 까만 눈의 초점이 나를 보고 마주쳤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뱀장어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더라면 나는 조금 다른 감정을 갖게 되었으리라. 솥안의 어둠을 삼키려는 듯 천둥 같은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사람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에 대해 괴이쩍은 두려움보다 경건한 애도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스웨덴 작가 패트릭 스벤손이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하며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와 뱀장어에 관한 역사, 생물학, 문학, 철학 연구를 바탕으로 쓴 일종의 회고록이다.

 

저자는 뱀장어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연구 사이 사이에 자신과 아버지의 뱀장어 낚시 이야기를 교차해서 등장한다. 책 속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오랜 역사 동안 뱀장어는 알 수 없는 생물체였다. 인간은 뱀장어의 생식, 성장, 암수 성별에 대해 알고자 끊임없이 도전해왔지만 실패해왔었다. 과학, 철학에 능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가 갑자기 진흙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했고(텔레스형, 다른 면에서 뛰어났잖아. 그런데 뱀장어한테 왜그래.) 많은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아니 수천년 동안 뱀장어의 미스테리를 풀고자 노력했지만 비밀은 꽁꽁 감추어져 있었다.

 

유럽에서 서민의 배를 채워줄 기름지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로 쓰였던 뱀장어는 한편으로는 미지의 존재였던 것이다. 뱀장어의 암수 성별과 생식에 대해 상금까지 걸어가면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왔다. 꽃길을 버리고 평생 뱀장어의 서식지와 이동경로를 쫓아 다녔던 과학자 요하네스 슈미트, 뱀장어가 스스로 번식한다고 생각한 린네, 유명한 코마키오 뱀장어, 몬디니의 발견, 그 발견에 대한 스팔란차니의 의심, 그리고 어둠과 섬뜩함, 알 수 없는 불쾌감의 이미지로 뱀장어를 그려낸 문학작품들을 따라가다보면 뱀장어에 대한 평가는 다소 혼란스럽고, 지식은 얕았으며 동시에 밝혀낼 수 없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정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체 왜 뱀장어에 매혹된걸까?

 

 

몇 백 년을 연구해도 생식기조차 성체의 모습과 이동경로, 번식의 과정조차 알 수 없고, 어쩌다 인간에게 잡혀 깊은 어둠 속 항아리에 빠지면 변태를 거치지 않고 청년기 모습 그대로 80여년을 살아나가는 그 기묘한 모습을 왜 그다지 열심히 연구했단 말인가? 아마도 인간의 의식과 지식으로 밝혀낼 수 없는 커다란 벽에 부딪친 점이 더욱 도전정신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며 에베레스트 산맥을 등정하려 하는 도전정신과 비슷한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론 서민의 식탁에서 값싸게 배를 채워줄 식량으로, 때론 불쾌하고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는 낯선 존재이자 평생을 바쳐 연구해올만한 열정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뱀장어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 또한 심연의 어둠 속에서 지내는 그 기운찬 녀석들의 일생에 대해 신비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뱀장어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이야기보다 더 이 책을 값지게 한 것은 아버지와의 뱀장어 낚시이야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뱀장어와 인간의 삶의 질서와 추억 이야기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평생 아스팔트를 까는 노동자로 일했으며 종국에는 끓어오르는 아스팔트를 깔 때 흡입한 연기로 인해 암을 선고받고 운명하였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인 나와 뱀장어 낚시를 하며 아버지 나름의 사랑을 표현하고 인생을 사는 법을 조금씩 열어 보여준다.

 

 

두꺼운 나일론 줄이 뱀장어의 몸을 칭칭 감싸고, 껍질 속으로 줄이 파고들어 온통 지독한 줄무늬 투성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줄을 풀고 뱀장어를 손으로 잡아 쥐었는데, 꼭 죽은 것 같았다. 양동이에 넣고 배를 위로 한 채 둥둥 떠있는 뱀장어를 지켜본다. 10초가 흐르고 20초가 흐른 뒤 뱀장어는 서서히 몸을 뒤집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때의 경험은 어린 내게는 죽었던 뱀장어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보인 기이한 경험이었다. 뱀장어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가 나에게도 형성이 된다.

 

 

뱀장어는 저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부자 간의 말없는 신뢰와 추억, 경험, 역사를 공유하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수단이었고, 신화였다. '뱀장어는 특이하지'라고 말하며 껄껄 웃던 아버지는 친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의 새아버지는 기계적이고 정확했고, 낚시와 같은 취미활동으로 허송세월하며 보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분이었다. 그러나 저자의 아버지는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들을 아들과 쌓아나간다. 아버지와 아들이 낚시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경험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행동, 뱀장어에 대해 가졌던 같은 견해. 돈으로 시간으로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추억이 고스란히 아름다운 문장이 되어 이제 살아 움직인다.

 

암이 간으로 전염되어 누런 눈자위를 보이던 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전 나에게 말한다.

너의 오두막을 가지렴.

 

 

갈대가 무성한 오두막. 미끼를 끼우고 낚시대를 던져 뱀장어 낚시를 할 수 있는 공간. 아버지와 나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겠노라 저자는 약속한다.

 

 

가을이 되면 은뱀장어들이 이리저리 헤엄쳐 대서양으로, 그리고 사르가소해로 출발해 자신 알을 낳고 뱀장어의 이야기는 완성되고, 곧 뱀장어는 죽는다. 뱀장어 낚시를 즐겨했지만, 인간은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또한 생명의 근원이었던 대지로 돌아갔다. 책을 읽으며 뱀장어의 긴 여정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부자의 뱀장어 낚시를 읽다보니 저자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바치는 헌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 철학, 과학사를 오가는 뱀장어사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아버지와 아들의 에피소드는 애잔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긴 방수용 고무바지를 입고 진흙으로 질척이는 물가에서 갈대 숲을 헤치고 뱀장어 낚시를 하는 그 곳에 함께 서서 글을 읽는 느낌이었다.

 

팔다리가 잘려도 꿈틀거리고, 가두어 기르려다 보면 도무지 생식을 하지 않고 곧잘 죽어버리는 저 까다롭고 신기한 생명체들, 그들의 팔딱거리는 움직임, 그 타탁거리는 소리들이 잔상에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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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자유롭게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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