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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이유

[도서] 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 저/문희경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나는 어릴 때 어느 여름날 바닷가에 놀러갔다 물에 빠져 죽을뻔 한 적이 있다.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의 이야기로만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물 공포증에 시달렸고, 물가 근처에는 잘 가지 않는다. 간다 하더라도 발만 살짝 담근다. 발끝에서 느끼는 시원함뿐.

남편과 보라카이 여행중에 생애 처음으로 깊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 스노쿨링을 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무서웠지만 재미도 함께 느껴었다. 수영 잘하는 지인은 수영할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은 그저 수영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룬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사부터 태초에 생긴 것까지 다루고 있다. 사람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수영이 생겨나기 시작한 이야기부터 나온다. 가볍게 읽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P.37]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2014년에 저서 <내 안의 물고기>를 토대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류 고생물학자가 인간 해부학도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로드맵이 다른 생물체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어류의 유산이란,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인간의 팔다리가 동일 세포군에서 유래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진화론적으로 어류에서 왔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P.75]

고통과 쾌락, 공포와 경외, 두려움과 유쾌함, 삶과 죽음. 영은 오늘날 수영할 때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욕구가 없는 상황에서도 생존을 향한 열정에서 희열을 맛본다라고 적었다. 우리는 수영하면서 삶 그 자체의 강렬하고도 생생한 경험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우리는 진화한다. 그래서 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것이든 처음에는 생존이 우선적이었을 거다.

 

[P.84]

17세기의 휴양지는 태양을 숭배하거나 일광욕을 즐기기 위한 곳이 아니라, 기적처럼 고통이 치료되길 바라면서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곳이었다.

물에 빠지면 살기위해 수영을 하고, 몸이 아프면 치료되길 바라면서 몸을 담그는 행위가 샤머니즘스럽다.

 

[P.92]

부력, 부유, 가벼움, 자유로움. 수영을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물질 세계에서 갈구하는 존재의 가벼움, 존재의 안녕감을 이야기할 때도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 우연일까?

돌핀클럽 아래층의 보트 창고와 정문 계단 사이의 벽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의 한 구절이 붙어 있다.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고 끝없이 새롭게 하라.”

물 위에 떠있는 느낌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 같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궁금하다. 정말 그런지 말이다.

 

[P.137]

수영은 킴이 여기까지 오게 해주고 이 모든 일을 꿈꾸게 해주었다. 수영은 킴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활기차고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킴은 수영 원정을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기가 달라졌다. 수영을 통해 자기를 넘어선 세계를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 것이다. 킴은 개인 수영이라고 해도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는 수영이 삶의 활기를 찾아주는 것인가보다. 나에게는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한번쯤은 나의 공포를 극복하고 수영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은 언제나 탈출 수단이었다.]

 

 

[P.254]

호수나 강이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물이 우리를 흘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깊은 물은 우리의 의식을 끌어올려서 그냥 바라만 보지 말고 어서 들어와 헤엄치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물속에 뛰어들면 기이한 경계의 공간에 머문다. 물에서는 매달려 있으면서 움직인다. 떠 있으면 가라앉을 위험에 처한다. 조류와 싸우지 않고 조류에 몸을 맡기면, 순간 동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정적인 상태인 몰입에 이른다.

물은 마음을 비우면 평온함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목숨과 바꿔야 하는 지경이 되는 것 같다.

 

 

[P.273]

수영은 임계점을 넘나드는 운동이다.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얼마나 멀리 가야 하는지, 무서워지기 전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가고 싶은지. 중요해 보이는 문제를 한참 고민하지만 수영을 마칠 즈음이면 모든 고민이 물에 씻겨 사라진다. 물에서 나올 때는 적어도 48%는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수영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운동인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앟아가기도 하니깐. 수영을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엄마의 뱃속 양수에서 놀던 것이 무의식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P.274]

물속에 들어가면 내면이 고요해진다. 때로는 소중한 공백을 얻기 위해 수영한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세어보다가 명상에 들어가고, 레인을 가로지르는 햇살의 오묘한 빛를 관찰한다.

한 가지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마이클 펠프스는 어릴 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진단을 받았다. 어린 펠프스에게 수영장은 안전한 피난처였다. 수영장에 있으면 마음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P.286]

세상과 세상의 힘에 집중하면 진실이 드러난다. 물의 흐름에 따라 헤엄치면 절대로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면 갑자기 나에게 저항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나는 내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물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물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다 위에 떠있는 상상을 해보자. 끝을 알수 없는 넒은 물 위에서 사람은 그저 작은 존재인 것이다. 수영은 즐기는 것도 있지만 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혹여나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대피를 해야 하거나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살리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제일 먼저 물에 대한 공포가 없어야 가능할 일일 것이다.

 

[P.288]

물은 영원히 유동적이다. 수영은 내 주위 환경에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변형을 목격하는 일이다. 수영은 무수한 삶의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는 일이다.

고여있는 물이라 할지라도 마르고 없어질 것이니 유동적이라고 보는 것일테다. 수영이 무수한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데 마음 준비부터 해야 가능한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변수가 많은 것이라서 그런 것일까. 후자일 것이다. 그렇기에 삶과 수영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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