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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

[도서]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

유미 호건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이 책은 미국 이민, 이혼, 세 딸의 싱글맘, , 재혼 그리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유미 호건의 도전을 다룬 이야기이다.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의 퍼스트레이디 유미 호건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미국 이민 후 첫 남편과의 이혼으로 싱글맘이 되었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세 딸을 훌륭하게 키워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의 꿈이었던 미술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동료 작가들과의 그룹전에서 우연히 래리 호건을 만나 3년 교제 끝에 재혼했다. 그 후 남편 래리 호건은 메릴랜드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유미 호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한인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그녀는 주지사인 남편을 도와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앞장섰고, 특별히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모국인 한국으로부터 진단 키트 50만 개를 수입할 수 있도록 조처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이민 1세대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며, 희망을 주고 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육아로 인하여 거의 세상과 단절이 된 상태로 몇 년을 살다보니 그녀를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그저 미국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는 한명의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인가 했는데, 예상을 뒤엎는 엄청난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지금도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서 살아간다는 것이 엄청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인데 유미 호건의 젊은 시절 70년대쯤에는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였을텐데도 몸소 실천을 했고, 치열하게 살았으며 꿈을 끝내 이루어낸 한명의 연약한 여자이지만 강인한 엄마이기도 한 그녀의 이야기가 믿기 힘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로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원대한 꿈을 갖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은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세 딸을 양육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며 악착같이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미술 선생님이라는 꿈을 포기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큰아버지가 텍사스로 불러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후 조금의 여유가 생겨 예술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다고 한다. 대학교 졸업후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석사 학위를 받고 모교인 메릴랜드 예술대학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P.78]

내가 나의 삶과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이것이다.

어려워도 포기하지 마라.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테다. 잊지 않고 무엇이든 행한다면 어떠한 형대로든 이루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 래리 호건이 주지사로 취임한 지 100일 쯤에 볼터모어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것으로 인해 한인 업소들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한인 이민 1세대이자 최초의 한인 퍼스트레이디였던 유미 호건은 한인 1세대들의 피해 소식에 염려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어필을 하였고, 그것을 잘 받아들인 래리는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폭동 진압을 위해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등 신속하게 대처했다고 한다. 다행히 잘 마무리 되어 이전과의 평화로움은 아닐테지만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다 남편의 암 선고를 받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곁을 지켰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주지사로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암 선고를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유미 호건이 남편을 대신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지나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대부분 패닉상태가 되기 일쑤인데 잘 헤쳐나간 유미 호건을 보면 멘탈이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주지사가 되면 가족들이 관저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메릴랜드주 관저에 들어간 안주인들이 직접 요리도 하지 않는데 그녀는 가만히 있지 않고 그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요리도 하고 한국 음식을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하고, 심지어 김치 냉장고를 비치해 두었다고 한다. 김치 냉장고를 가져다 놓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는 공황 상태를 겪으면서 각종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유 없이 다른이들을 혐오하는 시선들도 늘어나고, 안그래도 인종 차별로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많은 형태의 폭력으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후 혐오 범죄가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혐오 범죄를 물리치기 위해 유미 호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여 CNN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했다고 한다. 그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폭력이나 복수심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서로를 더 사랑하고 아껴주고 결속할 것입니다.>

 

남편 래링게 아시안 혐오 범죄 근절을 위한 워크그룹을 결성하자고 제안했고, 미국에 최초로 결성되었다.

인종 차별 범죄를 막자는 건 특정 개인이나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 사는, 아니 전 세계에 사는 모든 이에게 인종 차별 범죄는 바이러스보다 지독한 부조리이다. 이 부조리를 당해 마땅한 사람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저마다 다른 생김새와 삶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므로 기본적인 권리와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지 않는가? 이때부터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생각을 전하기로 했다. [P.155]

여러곳을 다니며 끊임없이 외쳤다고 한다.

[P.157]

"아시안 혐오 범죄 반대 운동은 단지 아시아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 미국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것이 자신들의 최대 강점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여러 문화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하여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몸에 밸 수 있도록 유치원과 학교에서부터 음식, 노래, 공연, 언어를 재미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당당한 시민으로 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리를 명확히 알고 시민권을 취득해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투표하지 않는 시민에게는 목소리를 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메릴랜드의 퍼스트레이디이자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일원으로서,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로서 자신의 아메리칸드림은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민자로서 저마다의 배경, 출신, 전통, 문화를 지니고 각자의 아메리칸드림을 찾으러 이 땅에 왔지만 다 같이 공유하는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래리 부부는 243년 동안 재선에 성공한 메릴랜드의 두 번째 공화당 주지사 재선에 201811월 성공했다.

유미 호건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어느것 하나 녹록한 게 없었다고 한다. 숨 가쁜 인생을 살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가 그러했듯이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살면 언젠가는 희망이 내 편이 될 거라고 전하고 있다. 자신이 안정적인 위치에 있게 되면 남을 생각하기보다 이기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민자들과 약자들의 아픔을 보듬기도 했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며, 나는 이제는 나이들어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다시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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