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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도서]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빅터 프랭클 저/마정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우리는 그냥 산다.

죽지 못해서, 때로는 목표가 없어서.

삶은, 일상은, 하루하루를 견디기에도 고단하다.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보단 화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보단,

내가 피하고 싶은 일만 천지인 것 같다.

 

 

이런 삶인데,

대체 삶의 의미가 무슨 소용이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에 의하면, 삶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우리는 질문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바란다. 소망한다. 요구한다. 삶이여.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당장 내놓아라!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삶에게 묻지는 않는다. 대체 삶이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 건지.

 

 

 

보통, 삶이 내게 바라는 건 운명 혹은 소명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운명을 의식하는 건 아니다. 특히,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더더욱 외면한다. 운명에게 따진다. 더 좋은 것을 달라고 울면서 징징거린다. 이런 사람은 결국 운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빅터 프랭클은 삶이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과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제 혹은 업무처럼. 삶은 매 순간순간 변한다. 잘나가고 삶에 만족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위기가 닥쳐 넘어지기도 한다. 빅터 프랭클 또한 잘나가던 정신과 의사를 하다가, 갑자기 나치에게 끌려가 수용소에 갇히지 않았던가.

 

 

 

삶은 이렇듯 변하고,

이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인간에게 묻는다.

 

 

 

자, 너는 이 운명을,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거니?

책임질 거니?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심리학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수용소에 들어간 수감자들은,

몇 가지 심리 반응을 거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단계는 막 이송된 시기이다. 수용소에 막 도착한 사람들 중 95%는 사망한다. 바로 가스실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5%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방법으로 자살하는 게 가장 좋은가' 하는 물음이라고 한다.

 

 

 

이후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수용소 삶은 계속된다. 이들은 며칠 만에 급속도로 무감각해진다고 한다.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그러면 모든 생각과 에너지는 오로지 하루를 살아남는 데에만 쓰인다. 이를 무감정의 단계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미래에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은 결국 실망하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는 해방된 수감자의 심리학이다. 수감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뻐할 수 있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왜냐하면 수용소 안에서 그들은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였다. 따라서 그들은 기뻐하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했다.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그럼에도 우리는 삶에

 '예'라고 말하려 하네"

를 노래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조건에도

그것을 행했다. 노래 불렀다.

 

 

인간은 강하다.

용기 있고 책임을 질 줄 안다.

이 모든 것에도, 고난과 죽음, 질병,

심지어 강제 수용소라는 운명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선택할 수 없다.

단지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예 인가 아니오인가.

책임을 질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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