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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감이여

[도서] 요리는 감이여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나는 충청도에 살고 있다.

충청도가 고향은 아닌데,

남편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지인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그리고 대학 무렵부터 12년 정도

서울에서 살았다.

그래서 전라도와 서울 음식에 익숙하다.

뭐 한국 음식이 지역마다 얼마나 다르겠냐만은

그래도 미묘하게 차이가 존재하는데,

가령, 예를 들면 이곳 충청도의 잡채에는

콩나물! 이 들어가기도 한다.

(잡채에 콩나물 콜라보라니..

정말 신선한 요리법이었다. ㅎㅎ)

 

 

 

<요리는 감이여>는 바로 충청도 할머니들의

요리 이야기이다.

손 맛으로도 척척 맛을 내는

우리 할머니들. 어머니들.

그들의 요리에 담긴 철학과 삶의 이야기.

그리고 요리 비법까지 볼 수 있는 이 책은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가득하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렸다고 한다.ㅎㅎ)

 

책 속 일러스트

 

 

 

할머니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비슷한 면도 있는데,

대부분 학교를 못 다녔다.

전쟁이나 어려운 시골 살림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하고

살림을 꾸려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뒤늦게 한글을 배웠다.

한글학교를 다니며 글도 쓰고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요리하면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

가족들에게 맛있는 집밥을 해주며

사랑과 소중함을 느끼신다고 한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엄마. 그리고 고향.

그 두 단어를 떠올려 보면

문득 집밥과 고향 음식의 맛깔난 풍경이

어른어른거리지 않는가.

음식처럼, 정겨운 음식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또 없는 것 같다.

 

 

 

 

이런 인생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은

충청도식 사투리가 가득하다.

 

 

'넌칠넌칠 배추를 썰고'

(어슷어슷 배추를 썰고)

'풋꼬추를 씻쳐가지고 꼬타리를 자른다'

(풋고추를 씻어 꼭지를 자른다)

'무를 생채처럼 가신 다음'

(무를 생체처럼 썬 다음)

'그름하게 볶는다'

(중간에서 약하게 볶는다)

 

 

 

이런 요리법을 적은 할머니들의

삐뚤빼뚤한 글씨조차 사랑스럽다.

어떤 분은 아주 전문적으로

요리법을 상세하게 적기도 했지만,

어떤 분은 재료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그냥 감으로 쓰셨다.

(따라하면 그 요리가 안 나올 것 같다 ㅋㅋ)

 

 

 

 

고향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는

할머니들의 살가운 요리 비법.

이 책은 요리책이지만

왠지 요리책처럼 읽히진 않는다.

그보다는 반쪽씩 실려있는 할머니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와 닿으며

아. 그땐 그랬지. 할머니들.

참 힘들었겠다.

손 잡고 이야기 들어주고 싶네.

할머니들. 수고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책 뒷 표지에는 박찬일 요리사

추천사를 썼는데

이 말이 참 와 닿는다.

 

 

 

저울 찾지 말고
감으로 해 보는 거지 뭐.
사실 우리 인생도 감으로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이묘순표

통배추 겉절이

 

1939년생  |  충남 천안

 


 

 

 

 

남편 보필하고 자식 키우는 게

여자 할 도리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으며

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하고 밥해 먹고

시부모님 바지저고리 빨래하고

주변에서 진국이라 부르도록

우직하게 살았다.

 

 

5남매를 두었는데

애들 사랑할 새도 없이 키웠다.

남편과 20년 전에 사별하고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나이가 먹었고

이제야 시간 내서 공부하러 온다.

 

 

 

한글 공부도 하고

숫자 공부도 하고,

시간 될 때마다 복지관 봉사활동도 한다.

그래서인지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

글을 배운 뒤에 군대 간 손주에게

편지를 써 보낸 것이 너무 기뻤다.

 

 

 

  감으로 드글드글 무쳐 먹는 통배추겉절이  

 

통배추 겉절이는 어렸을적부텀 먹었던

엄마표 김치여.

허연 쌀밥 위에 척 걸쳐 먹으믄

울매나 맛있는지,

아직도 생생혀.

지금은 먹구 싶어두 못 먹지.

그 손맛 생각허면서 자식들헌티

반찬으로 해 주는 겨.

 

 

그냥 시골 농사지믄서 일하다

먹을 거 없으믄 밭에서 뽑아다가

드글드글 무쳐서 먹는 거여.

내가 반찬 헐 때 애들은 그냥 집어다 먹고

"엄마, 맛있어 맜있어"

"엄마, 최고여 최고여" 혀.

 

 

통배추는 속이 노랗구 꽉찬 놈으로 골러.

가을에 고추가 뻘겋게 익으면 따서 말려.

말린 고추는 보드랍고 매콤혀.

양념 비율 잘 맞춰서 간 해야 혀.

우리는 적으믄 적은 대로,

많으믄 많은 대로 감으로 혀.

 

 

 

 

 

 


 

민일덕표

콩죽

 

1941년 생  |  충남 홍성

 


 

 

 

국민학교 1학년 때 반장도 하고

공부도 잘 했는데

한 학기 다니고 전쟁 나서 학교를 못 갔다.

오빠 잃은 아버지는 전쟁 끝나고

딸도 죽을까 봐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과 소 60마리 키우며 산다.

처음에는 공부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닐까 말까 망설였지만 지금은

여기 오는 날만 기다린다.

이 나이 먹어서 어딘가

갈 데가 있다는 게 행복하다.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최고로 똑똑하다고

아들 며느리가 말해 줄 때 기분 최고다.

공부 더 해서 아들 며느리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맜있다는 칭찬에 힘든 줄 모르고 쑤어 먹는 여름 별미

 

 

콩죽은 결혼 전 친정엄마한티 배웠지.

그리고 시집 와서 콩죽 쒔더니 시어머니가

"맛있게 잘 쑤었다"

라면 잘 드셨지.

나는 콩죽 헐 때 당근을 자지잘게 쓸어서 늫는디,

색깔 나라구 늫는겨.

여름에 밥맛 없을 때 해 먹으믄 좋지.

이 콩죽은 파는 데두 읎써.

 

 

 

남편이 콩죽을 쑤면

"당신은 워째 이렇게 맛있게 잘 쑤어"

라고 햐.

"맛있게 잘 먹었소"

라고 하믄 기분이 참 좋지.

며느리들 셋이가

"어머님은 너무 맛있게 잘하세요.

우리 어머님은 어려운 줄도 모르고

우리가 잘 먹으면 많이도 해 주세요."

라고 하믄 또 나는 힘든줄도 모르고

기분이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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