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청도에 살고 있다.
충청도가 고향은 아닌데,
남편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지인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그리고 대학 무렵부터 12년 정도
서울에서 살았다.
그래서 전라도와 서울 음식에 익숙하다.
뭐 한국 음식이 지역마다 얼마나 다르겠냐만은
그래도 미묘하게 차이가 존재하는데,
가령, 예를 들면 이곳 충청도의 잡채에는
콩나물! 이 들어가기도 한다.
(잡채에 콩나물 콜라보라니..
정말 신선한 요리법이었다. ㅎㅎ)
<요리는 감이여>는 바로 충청도 할머니들의
요리 이야기이다.
손 맛으로도 척척 맛을 내는
우리 할머니들. 어머니들.
그들의 요리에 담긴 철학과 삶의 이야기.
그리고 요리 비법까지 볼 수 있는 이 책은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가득하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렸다고 한다.ㅎㅎ)
책 속 일러스트
할머니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비슷한 면도 있는데,
대부분 학교를 못 다녔다.
전쟁이나 어려운 시골 살림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하고
살림을 꾸려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뒤늦게 한글을 배웠다.
한글학교를 다니며 글도 쓰고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요리하면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
가족들에게 맛있는 집밥을 해주며
사랑과 소중함을 느끼신다고 한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엄마. 그리고 고향.
그 두 단어를 떠올려 보면
문득 집밥과 고향 음식의 맛깔난 풍경이
어른어른거리지 않는가.
음식처럼, 정겨운 음식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또 없는 것 같다.
이런 인생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은
충청도식 사투리가 가득하다.
'넌칠넌칠 배추를 썰고'
(어슷어슷 배추를 썰고)
'풋꼬추를 씻쳐가지고 꼬타리를 자른다'
(풋고추를 씻어 꼭지를 자른다)
'무를 생채처럼 가신 다음'
(무를 생체처럼 썬 다음)
'그름하게 볶는다'
(중간에서 약하게 볶는다)
이런 요리법을 적은 할머니들의
삐뚤빼뚤한 글씨조차 사랑스럽다.
어떤 분은 아주 전문적으로
요리법을 상세하게 적기도 했지만,
어떤 분은 재료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그냥 감으로 쓰셨다.
(따라하면 그 요리가 안 나올 것 같다 ㅋㅋ)
고향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기는
할머니들의 살가운 요리 비법.
이 책은 요리책이지만
왠지 요리책처럼 읽히진 않는다.
그보다는 반쪽씩 실려있는 할머니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와 닿으며
아. 그땐 그랬지. 할머니들.
참 힘들었겠다.
손 잡고 이야기 들어주고 싶네.
할머니들. 수고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책 뒷 표지에는 박찬일 요리사가
추천사를 썼는데
이 말이 참 와 닿는다.
저울 찾지 말고
감으로 해 보는 거지 뭐.
사실 우리 인생도 감으로
살고 있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