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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도서]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저자의 반가운 새 책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저자의 책을 세 권째 읽었다. 저자가 지금까지 10권의 책을 낸 걸 생각하면 반도 못 읽은 셈이지만 그래도 한 저자의 책을 그쯤 읽었다면 나름 인연이 깊다 싶다. 특히 이번 책은 오래전 <오래된 새책>을 읽은 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의 책은 일반 서평집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독서행위에 대한 고찰하기도 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읽으면서 공감도 되면서 난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 하는 안도와 자존심의 스크래치 나는 소리를 번갈아 가며 들어야 했다고나 할까. (물론 그 스크래치는 오래전 인터넷 서점에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이미 나긴 했다. 독서 고수들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그전까지는 내가 독서 꽤나 하는 줄 알고 살았던 것을 깊이 회개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독서는 실존적 행위다. 누구와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건 그다지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문득 책을 좋아하면 생길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먼저 저자가 지적했던 대로 샀던 책을 또 사는 것이다. 읽으면서 나도 혹시 그런 적이 있었나 생각을 더듬어 봤는데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없는 것이다. 대신 어머, 내가 이런 책도 샀어? 하는 책은 있었다. 그건 강영계 교수의 <사랑학 강의>다. 이걸 언제 왜 샀는지 모르겠다. 오래전에 절판된 것으로 아는데 모르긴 해도 중고샵에 절판본으로 싸게 나와 샀던 것 같다. 뭐 그게 아니어도 강영계 교수의 책은 사놓고 후회할 일은 없겠다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까맣게 정신 줄 놓고 살다니 다소 어이가 없다.   

 

또 그래서 말인데 책을 좋아하면 절판본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절판돼 없는  보다 현재 있고 앞으로 나올 책들이 무궁무진한대도 굳이 절판된 책에 목을 맨다. 물론 희귀본이 될 가능성 때문이기도 하고 구할  있을  구해야지 나중에 후회할지 몰라 사게 된다. 더구나 그게 우리가 알아줄 만한  문인에 관한 책이라면 어쩔 것인가. 절판본에 대한 욕심은 중고샵이 생기고부터인데 이것이 활성화되기 전엔 절판본은 헌책방이나 나가야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중고샵에서 쉽게 살 수 있으니 이것에 대한 유혹이 새책에 대한 유혹보다  강한  같다. 지금은 필요한 책만 사자는 주의여서 절판본도 가급적  사려고 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니 자꾸 눌러놨던 욕망이 자극을 받는다.       

 

희귀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은 구간 절판으로 나오지만 전에 엔인 랜드의 <아틀라스> 4권짜리가 중고샵에서 비싼 몸값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난 그 책이 궁금해서 두 권을 먼저 사 둔적이 있었는데 나름 뿌듯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얼마 안 있다 이 책이 새로운 판본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아쉽다기 보단 그럼 그렇지 내 주재에 무슨 희귀본인가 했다. 

 

하지만 희귀본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 솔직히 나도 능력만 있으면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헤매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실제로 이 책에서 그런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느 날 동료가 무슨 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다 그것을 철회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자존심인지 굳이 찾으러 나섰다고. 그 부분 읽는데 웃음이 났다. 이걸 두고 점잖은 용어로 '젠틀 매드니스' 즉 애서광이라고 하지 않나. 책을 진짜로 좋아한다면 그 정도의 모험은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사랑은 아직도 어설프다 싶다.       

 

그런데 애서광은 꼭 책을 찾아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서광은 좀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단 책을 좋아한다면 애서광의 잠재적 요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건 또 장서가들에게 있을 것이다. 물론 책을 사서 모을 땐 자신이 애서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서가라고 생각하지. 그러다 어느 날 어떤 계기로 모았던 책들을 처분해야 하는 때를 맞이해 보라. 그때 드는 정신적 반응이나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재작년 가을 큰 맘먹고 2, 30년간 모았던 책을 박스째 처분한 적이 있는데 책도 영혼의 산물일까, 그것들이 집을 나가는데 왜 자기를 파냐고 책들의 아우성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밤  비워진   책이 있던 자리에서 머리 푼 책 귀신을 볼 만 같고, 내가 책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싶다. 책의 입장에선 한때는 왕의 총애를 받고 궁에 들어왔다 어느새 잊힌 궁녀가 된 처지가 되는 것인데 그것도 부족해 한 순간에 버려지게 되니 왜 그런 상상이 들지 않겠는가.  

 

요즘 책은  어쩌면 그리도 예쁘고 미끈하게  빠졌는지 모르겠다.  생기면 버리기도 쉬울 텐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으니 각 출판사마다 그야말로 오지게 신경 쓰겠지. 그런 책을 또 몇 년 후에 통째로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그것들에 깔려 죽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물론 중고샵에 팔 수도 있다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으니. 그래서 책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를 서재도 꾸미는 것도 부족해 아예 집 한 채를 사서 서고  서재로 꾸미기도 한다던데 이해가 갈 것도 같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오래전 나도 엄마랑 책 가지고 대립한 적이 있었다(모녀가 사이가 다정하고 좋기란 글쎄...). 나는 책을 좋아하고 엄마는 옷을 좋아한다. 서로 좋아하는 취향이 다른 건데 엄마는 그놈의 책을 어디다 쌓아두겠다고 자꾸 사냐고 구박을 한다. 쌓아놔 봤자 방안을 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럼 엄마는 왜 옷을 자꾸 사는 건데 하며 맞섰다. 그러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자도 아내의 분의 눈치 꽤나 보고 사시나 보다. 그래서 책을 사면 그 책을 받는 경로가 세 군데나 있다고 해서 놀랐다. 그만큼 책을 둘 장소가 세 군데나 있다는 말인데 왠지 부러운 생각이 든다.     

 

또 책을 좋아하면 있을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그 책이 문학과 관련이 있다면 여러 개의 번역본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작품만 해도 번역자가 많고 그에 따른 판본 역시 많다. 이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하나 달랑 읽었다고 자랑하면 우스워진다. 어느 출판사의 누구 번역을 먼저 대고 말해야 하는 시대가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저자 덕분에 채수동이란 우리나라 러시아 번역 1 세대에 속하는 번역자를 알게 되었는데 과연 그가 어떻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번역했을지 궁금해진다. 조만간  봐야 할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면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이 책의 미덕은 각각의 책에 대한 이면과 사연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에 있지 않나 한다. 특히 '잃어버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의 행방은?'은 한 편의 단편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이 아니면 그 미스터리를 어떻게 풀겠는가. 더구나 앞서도 채수동 번역가 얘기를 했지만, 저자가 그토록 그에 대해 온정을 담아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채수동 번역가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바둑 소설 <명인>을 번역했던 민병산 선생의 이야기와  <성문 종합 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에 관한 이야기 역시 감동적이었다. 솔직히 나는 성문 영어 책이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도 학창 시절  시리즈    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도 몰랐다. 그냥 남이 사니까 나도 산다는 정도였을 뿐. 알고 나니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책을 읽어 왔지만 책은 역시 관심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나 보다 싶다. 읽으면서 이 많은 사연들을 어떻게 끌어 모았을까 저자의 돈키호테적인 노력과 수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오탈자에 예민해진 건지 아니면 원래 이 책이 많은 건지 암튼 오탈자가 생각보다 많이 발견됐다. 오지랖 일지 모르겠는데 31p의 <경선지련>은 <경성지련>이다. 혹시 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제목을 바로 입력해야   같아서 알린다. 또한 243p의 '닐스의 모험'에서 작가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여류' 작가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제 여류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으며 '여성'이라고 해야 한다. 아직도  말을 간혹 사용하는 예가 발견되기도  한 번 더 각성하는 의미에서 여기 밝혀둔다. 저자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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