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김홍민 저
어크로스 | 2015년 06월

 

북스피어의 김홍민 사장은 일명 마포 김 사장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그가 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책은 정말 재미이기도 하거니와, 과연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사장이라면 이 정도의 썰은 풀 줄 알아야지 싶게 그 분야의 해박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노버트 데이비스의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의 출판기다.

 

(지금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포 김 사장은 2013년 11월부터 <한겨레>에 매달 한 편씩 칼럼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비슷한 무렵 900페이지 짜리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냥 있어 보일 것 같아서 읽었고, 몸짱 헬스클럽 강사가 근육강화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고. 그러면서 의외로 비트겐슈타인의 평전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말도 전한다. (그러니까 나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 평전에 따르면 이 천재 철학자가 의외로 추리소설 마니아였다. 그의 책장엔 <디텍티브 스토리 매거진>이란 잡지가 가득 차 있었고, 유독 그가 좋아했던 작품은 노버트 데이비스의 <두려운 접촉>이었다. 그는 자신이 읽었던 수백 편의 소설 중 좋은 책이라 부를 만한 책 두 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말을하니 노버트 데이비스가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그는 1909년 4월 18일, 일리노이 모리슨에서 태어났고, 스탠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의 친인척 중엔 로버트란 이름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노버트란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는데 그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고. 가난한 농촌마을 출신의 법대생이었던 그는 대공황 직후 어려운 시절이라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잔디를 깎고 차를 닦고 모래를 퍼서 날라보았지만 성실히 노동하는 삶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타자기로. 그러니까 학비를 벌기 위해 탐정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

 

1932년(어디는 34년이다) 6월, 데이비스는 펄프 잡지 <블랙 마스크>에 첫 작품을 발표하고, 이듬해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미 <다임 디텍티브>, <디텍티브 픽션 위클리> 등에 작품을 쓰며 작가로 활동한다. 탐정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벌이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그는 변호사 시험을 포기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데이비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작품을 쓰며 여러 펄프 잡지 작가들과 교류했다. 이들의 모임은 ‘픽셔니어즈’(The Fictioneers)라는 이름이었고 스물다섯 명 정도가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데이비스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레이먼드 챈들러도 모임에 나왔다고 한다. 챈들러는 데이비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블랙 마스크>에 자신의 첫 작품을 발표하기 전 펄프 픽션에 대해 연구했고 노버트 데이비스의 초기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실제로 데이비스의 <레드 구스>는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소설은 <블랙 마스크>에 실린 여러 소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고 챈들러는 추앙했고, 많은 작가들이 노버트 데이비스의 소설에 주목했다.

 

암튼 이 사실을 그냥 놓칠리 없는 마포 김 사장은 자신의 칼럼에 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써 송고한다. 그렇지 않아도 매번 뭐에 대해 쓰나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만큼은 마감 지옥에서 벗어나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갑자기 출판사로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부족해 어느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분의 전화도 받았는데, 도서관으로 <두려운 접촉>에 대한 문의가 너무 많아서 업무를 볼 수가 없다. 번역이 되지 않아 그럼 원서인 <Rendezvous with Fear>라도 구하려고 했지만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우리나라에 출간도 되지 않았고 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을 일간지에 적어놓으면 어떡하냐며 원망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주의해 달라는 당부까지 듣는다.

 

순간 마포 김 사장도 빡치고 만다. 젠장, 요즘 사람들 신문을 읽지 않는다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요즘 사람들이 신문을 읽지 않는데 번역되지 않은 책 좀 소개했다고 무슨 대수랴 했던 모양인가 보다. 그건 확실히 그가 요즘 사람들을 얕잡아 보긴 했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데 눈이라고 없을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화난다고 문의한 독자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고,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두려운 접촉>은 한국에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Rendezvous with Fear>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원서를 구할 수 없는 이유는 'Rendezvous with Fear'라는 판본이 절판된 이후 미국에서 'The Mouse in the Mountain'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절판이라 헌책방에서나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고. 딱히 미안하지도 앖았지만 예의상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문의 전화는 몇 달간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김 사장은 'The Mouse in the Mountain'의 한국어판을 내가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란 생각을 한다. 그때부터 그런 문의 전화에 한결 답하기가 수월해졌다. "아. 그 책이요? 올해가 가기 전에 북스피어에서 내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그러자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오히려 고맙다는 칭찬만 잔뜩 들었다고. 그래서 나온 책이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다. 어떤가. 이만하면 관심이 가지 않나. 무엇보다 비트겐슈타인 형님이 사랑했다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출판 관계자들이 그렇게 기민한 건 아닌가 보다. 몇 달씩 문의 전화에 시달릴지언정 한국어판을 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니.

 

참고로, 노버트 데이비스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지만 비운의 작가였다. 40년대에 들어 펄프 매거진 시장도 조금씩 붕괴해 갔고, 이 업계 외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던 그는 심리적, 물질적으로 위기 상태에 있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1949년에 데이비스는 그의 두 번째 아내 낸시와 코네티컷으로 이사를 갔다. 그것은 낸시가 뉴욕 출판사들과 더 가까이 있기 위해 권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해 7월, 데이비스는 홀연히 휴양지인 케이프 코드로 떠났고, 자동차에 호스를 연결한 다음, 머물고 있던 곳의 욕실로 끌어왔다. 그는 그곳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그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때 그가 소유한 재산은 얼마 되지 않았고, 암 판정을 받은 상태 등 이런저런 나쁜 상황들이 겹쳐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라고.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