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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등등의 문학

[도서] 기타 등등의 문학

전성태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이 책은 저자가 문학집배원을 자처하고 독자들에게 부친 편지들 가운데 엄선해서 책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문학을 구독 서비스를 했었던 모양이다. 나도 몇 년 전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젊은 작가에게 구독료를 지불하고 보내주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그때 정성스럽게 쓴 작가의 글을 보고 꽤 감동한 적이 있다. 나도 이젠 어느새 구세대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버린지라 구독하면 신문 밖엔 생각 못했는데 이제 구독은 다양하게 널리 퍼져있다. 그중 문학을 구독한다는 건 놀랍긴 하다. 또 이렇게 문학을 구독한다면 앞으로는 과학이나 다른 분야의 전문 작가도 이런 구독 산업에 뛰어들지 않을까.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그렇게 하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쓰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하는 존재이긴 한가 보다. 이 당연한 전제를 이 글을 읽으면서 또 한 번 확인한다. 저자가 문학집배원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했을까. 작가들이야 2, 3일에 한 권 또는 하루 만에도 책 한 권을 뚝딱 읽어 치우는 존재들 아닌가. 일일이 책을 읽고 그것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꽤 바빴을 것 같기도 하다.  

 

형식은 이렇다. 읽은 책을 요약하기보단 인상 깊은 내용을 골라 싣고 저자의 생각을 엽서 한 장에 들어갈 길이의 글을 썼다. 그렇게 짧게 쓴 이유가 있어 보이긴 한다. 좋은 글을 음미하고 독자의 생각을 더 깊게 해 보라는 나름의 전략이 있지 않을까. 처음엔 너무 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런 저자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늘 도톰하고, 글 많고, 눈과 마음도 사로잡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좀 아쉽긴 하다. 나는 늘 남의 생각이 궁금한 사람이라서 말이지. 이런 책들을 읽고 저자의 생각은 아주 조금 밝히는 건 독자에겐 배 배신이야, 배신.

 

그래도 아주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머리말에 나오는 박영근 시인을 어찌 알았을까. 저자는 박 시인이 책을 참으로 아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계절마다 발표되는 시, 소설, 비평을 망라하여 꿰고 있고 술에 삭혀 전하는 감상이 일품이라고 했다. 그뿐인가, 박성원의 소설 <하루>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짧지만 도회적이면서도 강렬한 구성이 좋았다. 와, 우리나라에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다니. 한 번 그의 작품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저자는 당신의 하루는 어땠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고 글 말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내는 하루의 종합은 12억 시간. 지구인들의 하루의 총합은 1600억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뭐 천문학적인 숫자고 시간이라고 밖에는 말 못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수치로 밝히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적이고 개개인에겐 얼마나 귀한 시간일까 감이 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짜 웃겼던 건, 이정록의 <교무수첩에 쓴 연애편지> 중에서다. 내용은, 이정록 시인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에 모 출판사에서 나눠준 교무 수첩을 고향집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어머니가 뭘 쓰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수첩에 뭘 쓸 만큼 학식이 있으셨던 분도 아니었다. 시인은 군 복무 때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의 글은 한글 받침이 항상 빠져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시작이 "사라하느 내 아더라" 그러면 시인은 울컥했다. 그런 어머니가 세상 떠나가신 분 그리워 그 교무수첩에 연서를 쓴 것이다. 그게 묘하게 시인의 마음에 질투가 났다 보다. 아버지가 누구한테 연서를 받을 만큼 대단한 분이 아니다. 술주정에 긴 병치례를 하고, 가난한 농사꾼이면서 집안사람에겐 인색하고 남에겐 한 없이 후한 그야말로 집안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가장인데 그런 분을 향하여 연서를 쓰니 신경이 쓰일 밖에.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조용히 이해시킨다.  

 

한 번은 어머니를 안고 블루스를 추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자신에게 안기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입방아를 놨다고 한다. "어머니, 저한테 남자를 느껴유, 어째서 자꾸 엉치를 뺀대유?" "아녀, 이게 다 붙인 거여.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순간 어머니의 볼이 붉어졌다고. 그러면서 "가상키는 하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읍서야." 이 이야기는 사랑받는 일에서만큼은 정말 아버지가 부럽다고 맺고 있다. 

 

재밌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은 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런 발견의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뭐 때문에 글을 읽겠는가. 이런 글은 예전 같으면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발견의 기대 때문은 아니겠는가. 평소 쉬거나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고 하겠지. 그럴 때 어느 작가가 보내주는 편지를 받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출판사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 책은 굳이 안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인들의 하루의 총합이 1600억 시간이라고 할 때 저자의 한 통의 편지를 보내는 시간은 1초에도 해당하지 못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쓰고 누군가는 읽으며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 시간은 또 다른 차원에서 무한대로 증식할 것이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작가와 독자가 직접 받는다는 현재성을 누려봤으면 한다. 해 봐서 아는데 나름 묘한 짜릿함이 있다. 작가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당신의 이메일을 보라. 무엇이 들어와 있는지. 거의 대부분 각종 고지서 아니면 연동해 놓은 SNS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 가운데 작가가 보내주는 글 하나쯤 끼어 있으면 그도 나쁘지 않다.  

 

독서 에세이는 이제 너무 많아졌다. 물론 그건 여전히 나의 관심 대상이긴 하지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읽으려고 한다. 읽으면 책에 대한 안목을 키워 줄 테니 좋긴 하겠만 이제 눈도 안 좋고,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있는 책이라도 잘 읽어두자는 쪽이다. 물론 반대로 어차피 책을 읽는 건 한계가 있을 테니 이런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기에 좋지 않은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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