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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책은 영화와 될거라고 예견하고 있다. 정말 이건 누가 봐도 영화화 될 것을 작심하고 쓴 티가 역력하다.  하기야  요즘엔 소설의 영상화가 보편적인 추세라 조금만 똑똑한 작가라면 아예 영화화될 것을 예상 내지는 꿈을 꾸고 쓸 것이다. 아마 내가 작가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이 작품이 영화와 된다면 별을 몇 개나 받을 수 있을까? 잘하면 세 개는 너끈히 받지 않을까?(영화에서 별 세 개면 충분히 봐 줄만한 영화라고 한다.) 그만큼 이야기는 미끈하게 잘 빠졌다. 그러나 난 오늘 이 소설이 그리지 않고 있는 면들을 얘기해 볼까 한다. 어차피 나는 문제적 인간이라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남이 동의를 하던 않하든 내 식의 얘기는 꼭 하고야 마는 성미라 어쩔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남이 보기에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이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이 책은 충분히 재밌고 미끈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 소설가 이승우 씨가 소설은 철저하게 '인공'이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굳이 이 소설에 죄(?)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깍고 다듬어 예쁘게 포장까지 했으니 이런 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난 실제로 이걸 서평단에 뽑혀 읽게 됐으니 선물이라면 선물일 것이다.) 이걸 거절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원석 보다 잘 깍고 다듬어진 게 더 마음이 끌리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만타는 굉장한 행운아라고 여겨졌다. 하나의 이야기니까 가능하지, 사실 하루 아침에 잘 나가던 직장에서 짤렸을 때 회복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소설처럼 빠르지가 않다.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우연'이란 게 현실세계에서 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 우연도 언제 찾아 올런지 모른다. 운 좋으면 얼마 전까지 다녔던 직장만한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 보다 못한 일자리를 얻게 된다. 물론 제 3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접하곤 한다. 이를테면 전도유망한 재원이 도시에서의 생활이 영증난다고 귀농을 해서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어느 휴먼 다큐멘터리도 접하기도 하지 않는가.

직장에서 쫓겨난 날,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를 한없이 가다가 어느 시골 화려한 고급 전원주택의 문이 열리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는 건 현실에서는 좀체로 잘 일어나지 않지만 한번쯤 꿈 꿔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심리적 대리만족을 하게 한다.

그 세계는 사만타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아니, 전혀 다르다기 보단 사만타가 살았던 세계와 오버랩되면서 새로운 국면과 발상이 일어난다. 조금은 여유롭고 넉넉한 세계. 이런 세계가 있었음을 왜 예전엔 몰랐을까?

중독은 중독된 그 당시로는 잘 모른다. 중독을 벗어나봐야 자기가 중독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그렇다면 중독은 왜 생기는가? 중독은 정말 나쁜일까? 많은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가 이것을 연구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중독은 두려움 또는 심리적 공황상태의 반작용으로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엔가 미쳐있지 않으면 나를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 그것이 알콜에 고착이 될 수도 있고,  섹스일 수도 있으며, 사랑일수도 있고, 사만타처럼 일일 수도 있다.

현대인의 병리는 대오이탈을 경험하지 않기위해 아둥바둥거린다는 것이다.(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거기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볼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세계안에 갖혀서 산다. 가끔은 파도타기도 해 줘야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만타는 심한 중증의 워커홀릭은 아닌 것 같다. 파도타기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고 모험을 감행한다.  비록 가정부는 그녀가 결코 원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질러버리고 보는 거다.

사람은 익숙한 것과 결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존재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되고 시야가 한층 넓어지기도 한다. 이건 정말 바람직한 과정이 아닌가.

사만타는 주말에 쉬는 건 지난 7년 동안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였다. 그래서 주말 계획을 세워본다.  남을 위해 음식도 만들어 보고, 사랑도 하게되며, 그 사랑 때문에 갈등도 해 본다. 싫은 사람을 위해 일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 들이고 느껴본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다. 중독이란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질주해 가는 것이기에 위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선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이 작품에서는 예쁘게 그리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직업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변호사가 반드시 비난 받아야 할 직업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가정부가 됐다고 다 만족하며 사는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사회 통념상 가정부가 변호사 보다 못한 건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오십보 백보란 생각이 든다. 요컨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느냐 안 갖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변호사라고 다 좋은 일만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가정부라고 해서 무조건 폄하해서도 안될 일이다.

소설적 공간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찾는 여행이 반드시 도시에서 시골로 공간이동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정은 도시에서 도시로 해도 좋고, 역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해도 이야기는 나올 것이다. 중요한 건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일 것이다. 그랬을 때 도시에서 시골로의 공간 이동은 무리는 없어 보이지만 좀 진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야기 말미는 우여곡절 끝에 사만타가 변호사를 회복하지만 결국 사랑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고 애인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데, 역시 이런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 좋다. 하지만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 하는 것 역시 진부하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삶은 어찌보면 그 이전의 삶 보다 몇 배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 잘 살지 않으면 이전보다 못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독자로선 알 수가 없다. 그냥 상상으로나 알뿐.

어째거나 이래저래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아주 잘 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행복해야 하고 보람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귀하고 빛나 보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의 말이 무척 인상 깊다.

인생을 망치는 일이라는 건 없다. 알고 보면 인생은 회복력이 무척 뛰어나다.(211p) 저자는 꽤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웬만해서 중독되지 않는 나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난 정말 웬만해서 그 무엇에도 미쳐버리지 못한다. 금방 싫증내고 미쳐버리지 않을려고 용을 쓴다. 이런 것 또한 중독일까? 그러면 나 같은 인간은 무엇인가에 조금은 중독되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과연 무엇에 중독되면 잘 중독됐다고 소문이 날까?

피에쓰: 나는 이 책에 별 4개를 줬다. 반 개도 표기할 수 있다면 난 3개 반을 줬을 것이다. 나의 경우 영화는 별 세 개 이상 이래여 볼 마음이 난다. 그러나 책의 경우 3개면 그다지 읽고 싶다는 느낌은 나지 않는다. 이 책은 문학성을 따지는 보수적인 독자라면 꼭 안 봐도 될 것 같긴하다.  하지만 보수라고 해도 트랜드를 알 필요는 있다. 이 소설은 웬지 안 보면 허전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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