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2월이다.
방학을 맞아 누군가는 더운 나라로 휴가를 떠나고
또 누군가는 눈덮인 곳으로 여행을 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지 못하고 매어있는 나는,
TV홈쇼핑 여행상품을 보거나 여행책자들로 위안을 삼는다.
언젠가는 나도 떠날 거란 믿음으로...
여행책자라고 하기엔 좀 독특하지만,
떠나고싶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가진 여행 일기 한 편을 만났다.
표지부터 눈에 띄는 일러스트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타이베이, 도쿄, 파리에서 나를 유혹한 가게들>
목차를 열면 책의 흐름이 보인다.
타이베이와 도쿄와 파리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조식, 카페, 문구&잡화, 서점 등 각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가게들의 이름인 듯하다.
드디어 작가의 페이지.
그림일기처럼 빼곡하게 그려진 그림과 설명들이 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번역되기 전의 작가의 글씨체가 정감있게 느껴졌다.
대만어(한자)를 읽을 수 있었으면 그 느낌이 더 생생하게 전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
작가는 타이베이, 도코, 파리 세 도시의 가게들을 소개하기 전에
각 도시에 대한 단상을 남겨두었다.
타이페이에 갔을 때 고향이 아닌 타지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기분이 어땠는지,
일본여행에서는 어떻게 계획하고 가는 곳마다 쓴 비용이나 맛, 느낌 등을 기록했는지,
파리에 도착했을때 건출물을 보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 감동을 전해주어서
가보지 못한 도시의 첫인상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나
예쁘고 특이하면서도 맛있는 커피가 있는 숱한 카페들을 보면서
실제로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 독특하게도 차고처럼 생겼다는 문구점이 인상적이었다.
가게의 이념이 '평범한 것들의 흔하지 않은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즐거움을 찾게 될지도.
도쿄의 가게들은 보지 않아도 막연하게 아기자기하고 눈에 띄게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작가의 그림에서 표현되는 화려한 음식들이나 고운 빛깔의 음료들을 보니
역시나 싶다.
그 중에서도 채식카페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본래 육식을 그닥 즐기지 않다보니 채소와 콩류만을 사용해서 만드는 음식들이 궁금해져서
도쿄에 가게 되면 꼭 찾아가 보리라 맘먹었다.
마지막으로
"자유와 예술이 어디든 있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공기를 감싸고 있는" 파리...
꿈의 도시 파리에서 작가가 눈여겨 본 곳들은 시장이었다.
미로같은 시장에서 뜻하지않게 꼭 갖고싶던 보물을 찾게 된다면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잡지일 수도 있고,
또 해묵은 접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생활의 흔적이 묻어있는 평범한 물건들을 보면서
현지인의 습관과 문화를 찾아가는 것이 재미있다는 작가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파리지엔을 위한 아침식사나 궁극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도 빼놓을 순 없을 테지만 말이다.
사진보다 더 생생한 손으로 그린 그림은 이 책의 커다란 매력이다.
여행을 하며 찾은 아름다운 가게를, 그 곳에서 느낀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여느 다른 여행관련 책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소박하지만 따스한 울림으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마치 친한 친구가 써준 편지같은 느낌이다.
언젠가는 작가가 소개해준 이 가게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