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운명

[도서] 운명

임레 케르테스 저/모명숙,박종대 공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005년 6월 24일

 

  

  

    운명』 

 

  -임레 케르테스

 

난 요즘 독서 슬럼프에 빠졌다.

한 마디로 요즘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그 말은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 읽기'를 생각하면, 나는 학부시절이 참 그립다.

학부시절, 도서관을 참 좋아했다.

 

텁텁한 책냄새, 부드러운 햇살, 진한 자판기 커피 한잔.

그리고... 책장들 틈... 나만의 공간...

 

책장과 창문 사이에, 일종의 난방기가 있다.

분명 '올라가지 마시오'라고 쓰여있지만, 나는 그 구석에서 책 읽기를 참으로 좋아했다.

우선 그 속에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와보지 않는 이상...

책을 읽다 잠들기도 하고, 이것저것 노트를 들고 끄적거리기도 하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 수업에 빠지기도 하던...

 

학부시절 내 독서량은 꽤 많았다 할 수있다.

뭐... 지금이야 바보가 되서, 읽은 책도 기억을 못하지만...

 

그 시절에는 "幻"하면, "뭐 읽냐?"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것저것 핑계로 독서량이 현격하게 줄어버렸다.

 

 

 

그래, 간만에 책 한권을 읽었다.

내가 '책을 읽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책 읽은 감상이 있다'라는 말과 같다.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 독서는 독서가 아니니까...

 

어쨌든... 참 오래 묵혀둔 책이다.

사놓고... 오래 읽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전에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었었다.

그때가 중학교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잘 모르겠다.

상당히 인상적이 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말을 들었다.

이 작가가, 이 작품으로...

 

그래서... 샀었다. 이 책을...

 

독일 나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

어쩌면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이다.

독일인들의 이차세계대전 참회를, 우리 일제시대와 비교하기도 하니까...

 

전에 빅토르 프랑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읽었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는 작가 자신이, 심리학자로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격었던 일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이다.

아니, 에세이 식으로 써놓았다는 말이 맞을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친구들과 안면도로 향하는 버스안에 있었다.

 

사람이 극한에 가까워 지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운명"은 소년의 눈으로 비교적 거리감 있게 강제수용소의 생활을 그렸다.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제한한 소년.

 

"만일 운명이 존재하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만일 자유가 존재한다면 운명은 없다

이 말은 '나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강제수용소는 말 그대로 '강제'로 '수용'된 곳이다.

내 의지가 아닌 타의로 나를 누군가 고의적으로 가두어 둔것이다.

고의적으로 나의 생활을 계획하고 제한하고, 강제적으로 나는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매사를 시간의 흐름에 다라 단계적으로 천천히 깨달아 나간다. 하나의 단계가 끝나고,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다가온다. 그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그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된다.

 

모든 사건이 한 순간에 그들에게 닥쳤다면, 그들은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 가장 강한 공감을 느꼈다.

그래서 인간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때때로 사람들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다 잘 살아가고 있어"라고 말을 한다.

그럴 때,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사람들 상황이 되면,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지몰라"

못되고 매정한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그 상황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면, 공지영의 소설에 나온 말처럼 누구나 자신의 고통은 비교될 수없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래 허울 좋게 나는 나의 힘겨움을 정당화 시킬 수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강제 수용소에 있었을 때처럼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적은 없었다고 확신한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왜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항상 자유를 갈망하고, 떠들고, 외치는 것일까.

그 어느때보다, 모든 혜택을 누리고, 모든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유롭지 못해' '난 속박당하고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모른다.

아니 '난 자유롭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지도...

 

'자유롭고 싶다'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소년은 '운명' 속에서 '즐거움' '행복'을 느꼈다.

'운명은 나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영원히 자유란 없을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운명안에 살고 있으니까....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불가능하다.

운명은 나 자신이다.

나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입안이 깔깔하다.

 

목구멍에서 치오르는 말이있다.

'자유롭고 싶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