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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도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죠지 레이코프 저/유나영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미국엔 단 두 개의 정당만이 존재한다. 공화당과 민주당. 우리나라 정당들과 거칠게 비교하자면 공화당은 새누리당, (미국)민주당은 (한국)민주당 및 기타 야당과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2001년 미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민주당의 엘 고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나마도 총 득표에선 엘 고어에 뒤졌지만 미국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선거방법(선거인단 투표) 덕분에 가까스로 이긴, 운은 좋으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 그였다. 재임기간 내내 실망스런 정책을 내놓고, 악을 처벌하고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낸다며 이라크 등과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말, 4년의 첫 임기를 끝낸 부시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다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당연히 많은 미국인들과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부시후보가 다시 대통령이 되기엔 임기 4년간 그가 보여준 행동들이 너무 실망스러웠고 민심 이반 현상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선거 결과는 조지 부시 후보의 대통령 재당선이었다.

 

  이 이해 안되는 결과를 받아든 많은 미국인들, 특히 진보진영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버린 거였다. 한동안 혼란과 낙담의 시간을 보낸 후 진보진영은 왜 이런 선거결과가 나왔는지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분주했으나 누구도 속 시원히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으나 그 무엇도 명확히 2004년 선거 결과를 설명해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찾아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이 책에 그들의 패배원인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일부 민주당원들의 손에서 읽혀지기 시작한 이 책은 어느새 미 전역 민주당원들 및 진보주의자들에게 퍼져나갔고 결국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인지언어학 창시자이자 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왜 공화당(보수정당)이 늘 민주당(진보정당)에 이기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공화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 언어학적 방법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런 다음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안까지 마련해준다.

 

  미국의 보수진영은 늘 프레임을 선점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부시대통령 시절 공화당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는 ‘세금 구제’다. 국민들이 내는 이러이러한 세금을 줄여서 국민행복 증진에 기여하겠다고 길게 설명하지 않고 ‘세금 구제’ 라는 한단어로 그속에 내재되어 있는 많은 의미를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구제’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세금을 내는게 웬지 불합리하고 부당하다 느껴지게 하고 그 부당함에서 구제해주는게 우리 공화당이라고 믿게 만든다. 반면 진보진영은 늘 보수진영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댄다. 위의 예로 재차 설명하자면, ‘세금구제’는 정부 재정상태를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정책입니다, 완전한 ‘세금구제’보다 특정분야에 한정된 ‘세금구제’가 적절합니다, ‘세금구제’보다 ‘증세’를 통한 복지구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보수진영이 만든 프레임 ‘세금구제’에 스스로 들어가 그 울타리 속에서 진보진영의 반대정책을 주장하고 보수진영을 반박하는 것이다. 강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보수진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더 깊히 갇히게 될 뿐이다. 그게 바로 프레임 선점이 가지는 효과다.

 

  부유층 대다수는 보수정당을 지원한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그렇기에 보수정당은 부유층, 기업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험요소가 하나 있다. 선거다. 제 아무리 부유층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도 민주주의라는 제도 내에서는 부유층의 한표와 서민층의 한표가 동일한 가치로 인정되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몇% 되지 않는 부유층의 표보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서민들의 표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양립할 수 없는 이 딜레마 -부유층을 위하지만 지지는 서민들로부터 받아야하는-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공화당은 1950년대부터 수십년에 걸쳐 엄청난 금액을 들여 수많은 연구소를 세우고 인재를 발굴하고 언론매체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여간해선 선거에서 지지 않는 정당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진보진영(민주당)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수진영이 그랬듯 진보진영에서도 그들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방안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스스로의 정당성과 정의만 믿고 막연히 국민들이 이정도면 지지해줄거야 생각하며 안일한 자세로 선거에 임해서는 늘 질 수 밖에 없으니 이젠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당이 무려 40여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선거전략을 이겨내려면 그 못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사례와 사정이 한국과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어쩌면 한국 뿐 아니라 보수, 진보로 양분되어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동소이하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보수진영을 위한 책은 아니다.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적어놓은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들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며 책 내용만으로 미국, 한국, 기타 나라들의 선거결과가 속 시원히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식으로 선거가, 대중심리가 이해되고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올해 국내 총선, 대선에서 패배해버린 민주당을 지지하다 소위 ‘멘붕’상태에 빠져버린 사람들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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