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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장 불행했던 한해를 마감하고 다시 새 해가 밝았다. 나는 올해 2월에 졸업을 했다. 레인코트도 졸업을 해서 서울에 올라가 시집을 간다는 이야기를 레인코트의 단짝 명희가 전해 주었다. 레인코트를 사귀면서  내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경우의 수였다. 현실은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레인코트가 그렇게 자주 불렀던 <웨딩 케익>이라는 노래대로 그녀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 위해 내 곁을 떠나갔다. 만일 내가 시험에 붙었다면 졸업과 동시에 올 봄에 결혼했을 것이다. 생명이 소생하는 때에 장단을 맞추어 함께 꽃피울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다. 죽을 고생을 해 놓고 오는 봄을 맞아 보지도 못하고 그 입구에서 쓰러지는 생명들이 많았다. 나에게 닥친 봄은 슬픈 것이었다.

 

다행히도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인코트와 꿈꾸었던 그녀와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숨쉬고 있었고 내 옆에는 초록바지가 있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공부하는 장소를 집으로 옮겼다. 아버지가 앞마당에 판자와 슬레이트로 서 너 평 남짓한 공부방을 만들어 주어서 그곳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초록바지도 졸업을 하고 직장을 잡아 울산으로 내려갔다. 지금은 부산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방을 얻어 울산으로 이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쑥맥 같았던 초록바지가 직장에 나가 세상물정에 물들어가는 것이 염려되었다. 초록바지는 우물 안의 개구리여서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첫 미팅에서 처음 본 남자인 나에게 목숨을 걸 정도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닫혀 있었다. 아마 여러 남자들을 만나고 겪었다면 나라는 남자가 금새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여자와 접시는 밖으로 내 둘리면 깨어진다는 이야기는 남자들이 지어낸 말이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랑의 껍질을 까내려가면 그 안에 질투라는 것이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어 오직 자기 하나만을 위해 주기를 원했다. 

 

 울산은 남성적인 도시였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울산공업단지라는 것도 결국 공고나 공대를 나온 사내들이 움직이는 곳이었고 현대왕국이라는 것 역시 팔뚝이 굵은 남자들이 모여 자동차나 선박을 만드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여자들은 그 도시의 은밀한 부분으로 숨어들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초록바지가 혼자 울산으로 내려가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책상에 앉아 았다가도 울산에 가 있을 초록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심란해 지기도 했다.

들어올 때 각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공부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집이 바로 길가에 있어 허구한 날 채소나 오징어, 계란, 과일 트럭들이 들이닥쳐 한 참동안 물건을 파느라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장바닥처럼 사람들이 꼬였들어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공부방 옆방을 미영이네 한테 월세를 준 것이 문제였다. 하루는 찌든 옷을 입은 웬 젊은 부부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한 아이는 들쳐 업고 나머지는 두 아이는 손을 잡아 끌다시피해서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월세 방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그들의 피로한 행색이 안되어 보이기도 했지만 월세를 좀 받아먹을 수도 있다는 심산으로 별생각없이 방을 내 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들 부부는 재혼한 부부였다. 아저씨가 전처부인과 사이에서 두었던 남매가 있었다. 그 중 큰 아이가 미영이 였는데 눈알이 크고 사납게 생긴 아이였다. 아저씨는 두 아이를 데리고 아줌마와 재혼을 해서 갓난 사내아이를 하나 들쳐낳아 업고 다녔다. 

 

이들 부부가 한 것은 우리 집에 몸을 들여 놓은 그날 저녁부터 매일 해대는 싸움질이었다. 미영이집의 방이 내 공부방과 붙어 있어 나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싸움의 이유는 씨앗이 다른 두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저씨가 뿌린 두 씨가 문제였다. 한 씨앗이 다른 씨앗을 분리하고 억압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미영이 아버지는 새 부인이 전처소생의 아이들을 때리고 구박한다고 허구헌 날 술을 먹고 깽판을 쳤다. 미영이 새엄마는 미영이가 거짓말을 하고 새로 태어난 사내동생을 잘 돌보지 않기에 몇 번 꼬집어 주었는데 그것이 무슨 대수냐며 대놓고 욕설을 해대며 울고 불며 동네가 떠나가라 대판 싸움을 벌이는 식이었다.

 

막가는 인생들이었다. 놀라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싸움질은 매일이었다. 아저씨는 일도 안 나가고 벌건 대낮에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소주 서 너 병을 마시고 나서 취한 상태에서 부엌에서 아무렇게 똥과 오줌을 싸기도 하였는데 썩은 냄새가 집안을 진동했다. 아이를 들쳐 업고 장사를 나갔다가 돌아 온 미영이 새엄마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는 신랑을 깨워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산다며 신랑의 옷을 찢고 몸을 할퀴며 피터지게 싸웠다. 통장인 아버지는 동네 챙피스럽다고 했다. 

 

문제는 미영이 엄마였다. 그럴 때마다 미영이 엄마는 공부하는 나를 불러 낸 다음 증인이라도 삼을 것 처럼 남편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알리는 일에 신경을 썼다. 어떨 때는 앞가슴이 훤하게 들어다 보이게 패인 옷을 입고 자기 신랑이 자기 목을 이렇게 졸랐다며 내 팔을 끌어다가 자기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해 보이기도 했는데  내 손이 미영이 엄마의 젓가슴에 닿을 때는 욕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미영이 엄마는 몸은 작아도 이쁘장해서 여자로서는 쓸만했다. 그런 아줌마가 어찌해서 알콜 중독이 되다 시피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배다른 아이들을 기르면서  고통을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아줌마의 하소연을 차마 냉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미영이 아버지가 허구한 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보기 딱해 아버지가 지인에게 부탁해서 공사판 일을 소개를 해 주어 요 며칠 동안 일을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낯에는 집안이 조용했고 미영이 집이나 우리 집에는 어색한 웃음이 돌고 한 가닥 희망같은 것이 감돌아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인 날은 며칠 가지 않았다. 오늘 갑자기 일을 나갔던 미영이 아버지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마자 얻어 맞았는지 왼쪽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고 위에서 아래로 핏자국이 그어져 있었고 입술 역시 피가 흐른채 퉁퉁 부어 올라서 들어왔다. 미영이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방문을 닫고 들어가 집이 떠나가도록 소리 내어 서럽게 울었다. 아저씨의 통곡 소리가 들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아저씨 방으로 건너가서 쓰러져 울며 신음하는 아저씨를 일으켜 세웠다.

 

 

- 아저씨, 일하다말고 대낮에 들어와 왜 그렇게 서럽게 우세요?, 눈과 입술은 또 왜 그렇구요?

 

-(......)

 

- 청산이 왔나?, 너 한테 미안하다... 흐~ 흑, 내사 마 서러워 더 이상 못살겠다!

 

- 아저씨,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보세요!

 

-으~흐흑 ...

 

 

나는 바짝 아저씨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낯에 밖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다. 한 참 멍 하니 있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 아~우, 오늘 낮에 점심을 먹고 반장한테 돈 좀 가불을 해 달라고 했더니만... 그 자식이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맨 날 가불 타령만 한다고 사정없이 때려서... 이 모양이 되었다. 으~흑, 내사... 정말, 서러워서 못살겠다.

 

 

- 그렇다고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패요?, 그 사람들 안 되겠네요!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 혼이 좀 나봐야해요!

 

- 어떻게?, 그 놈들 혼을 내냐. 청산아, 너는 법대 다니니까 좀 알 것 아니가? 어떻게 해서라도 혼을 좀 내 주라. 그 놈들이 사람을 아주 깐보고 이짓거리를 하는 것이니까!

 

- 알았어요!, 아저씨 이제는 그만 우시고 좀 누워 주무세요

 

 

다음날 아버지는 공사판을 찾아가 아저씨를 때린 사람을 만나 따졌고 결국 때린 그 사람과 형사합의를 했다. 아버지는 미영이 아버지 대신 합의를 해서 치료비와 위자료 쪼로 합의금을 받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돈이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였다. 합의금을 받아 든 아저씨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주라도 한 병 받아와서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방문을 걸어 닫고 인사 한번 제대로 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전 보다 더 자주 술을 마시고 아줌마와 싸움질을 했다. 돈줄이 싹 말라 있던 집에 갑자기 목돈이 들어오니 돈에 눈이 뒤집힌 아저씨는 허구한 날 술타령이었고 아줌마는 돈을 아껴서 장사 밑천으로라도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술만 마신다며 매일 같이 아저씨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리며 싸웠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옛말에 모든 것을 다 구제하더라도 인간구제는 하지 말랬다는 말이 있다며 그 말이 하나 틀리지 않는다고 혀를 차며 한탄을 하셨다. 월세를 좀 받아먹겠다는 욕심에 집으로 사람을 들여 허구한 날 사내와 여편네의 싸움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살얼음판이었다. 그리고 미영이네 집안 일로 내 공부에 지장을 주자 아버지는 미영이네를 끌어들인 일을 두고두고 후회를 하셨다. 사랑이 사랑을 부르지 못했다. 아버지가 미영이네가 불쌍해 사랑으로 거두었으면 그들 역시 사랑으로 보답을 해야했다. 그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그일로 우리 가족은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 나는 미영이네 일로 인해 공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포기직전까지 치달았다. 도저히 빠져 나갈 구멍이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사람이 무너지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이 수렁에 빠져드는 이곳이 지옥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길에서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만 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방향을 전환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 방향전환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영향으로 인해 그런 결심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아이가 셋이나 딸린 미영이네를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들이 갈 곳은 길거리 밖에 없었다. 내가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떠나기로 결심을 굳게 굳힌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울산으로 내려간 초록바지가 세상물정을 알아가며 빤질 빤질 닳아질 것이 두려웠다. 나는 서둘러 초록바지가 있는 울산으로 내려가고 싶어졌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한 순간도 집에 머물러 지내는 것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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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따라

    공부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또다른 시련이 시작되었네요~~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세상물정을 알아가는 초록바지의 사회생활은?~~

    2014.03.17 10:15 댓글쓰기
  • 열정

    시련을 겪어야 뭐가 되어도 되는 것이죠. 청산의 울산행은 또다른 이야기들을 가득 몰고 옵니다.^^

    2014.03.17 10:2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초록바지도 감시하랴 공부도 하랴, 결국 둘이 동거를 하게 되겠군요.

    2014.03.17 21:1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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