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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취직자리를 잡은 초록바지는 출퇴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하숙집을 얻어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출퇴근을 할 때는 가끔씩 내가 있는 집으로 와서 걱정도 해주고 했으나 울산 하숙집을 얻어 내려간 이후에는 점차 집으로 찾아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녀가 하숙을 얻기 전까지는 주 무대는 내가 있는 부산이었으나 울산으로 하숙을 얻어 이사간 이후로는 부산은 자신의 기억에서 점차 밀려났고 주 활동무대는 울산으로 이동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곳은 자연스럽게 변방이 되었다. 나는 한적하고 외롭고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채 해가 뜨고 지는 변방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 밖에 몰랐던 초록바지는 이제 그곳에서 피아노도 배우고 꽃꽂이도 배우는가 하면 서울에서 내려온 엘리트 총각사원들과 만나면서 점차 회사생활의 재미에 빠져가는 눈치였다.

 

여자에게는 젊다는 것이 재산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자의 몸값도 떨어져 젊은 때의 몸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명예와 같은 부차적인 장식들이 필요했다. 나이가 들어 돈이나 직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처녀들을 골드미스(Gold miss)라고 불렀다. 이런 장식들로 날아간 청춘을 다 보상할 수는 없었다 이런 여자들은 일찍이 사랑대신 돈과 일을 추구하기로 작정을 한 부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결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돈과 자리를 앞세워 젊고 유능한 남자들을 만나려 들었는데 때늦은 감이 있었다. 사람들은 골드미스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림도 없는 것이어서 브론즈미스(bronze miss) 정도로 여겨주면 좋을 것이었다.  

 

그에 비해  젊은여자는 젊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보석처럼 빛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탐을 내었다. 세상 인심이라는 것이 젊은 사람들을 좋아했고 또 새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초록바지는 수 백 명의 직원 중에 대부분이 남자인 그곳에서 연일 상종가를 쳤을 것이다. 모르긴 모르되 초록바지에게는 이유 없이 접근해서 얼굴 도장을 찍고 가는 총각들도 많았을 것이다. 나는 레인코트와 이별하고 나서 겨우 건진 것이 초록바지인데 이제 초록바지 마저 내 곁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가 싫었다. 나는 초록바지가 자유롭게 다니면서 남자들의 입방아에 오르 내리고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치장을 하고 악기를 배우는 등 취미생활에 몰두함으로써 나를 한 번이라도 덜 찾게 되는 것만 같아 자꾸만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점차 세상을 알아감으로써 나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초록바지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초록바지가 있는 울산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나 역시 울산으로 내려가 초록바지의 맞상대가 되어 주고 내 존재감을 확실하게 심어 주어야지만 그녀가 딴 짓을 못할 것이었다.

 

나의 이런 조급함에 비해 초록바지는 떨어져 지내는 잇점을 십분 활용했다. 울산과 부산에서 떨어져 생활하는 관계로 속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며 보고 싶으면 자기집과 내가 있는 부산으로 올라오면 되었기 때문에 답답할 것이 조금도 없었다. 아마 초록바지는 살면서 지금처럼 편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 누가 일찍 들어와라 어디를 가지마라며 간섭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야말로 독거의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초록바지는 내가 울산으로 내려갈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내심 불안해하는 눈치였고 그다지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울산은 부산 보다는 좁은 동네였다. 울산에는 명소라는 곳이 몇 군데가 있었다. 시장 통이나 백화점, 시내번화가, 방어진 같은 곳이 그런 곳이었는데 직장 사람들이 쫙 깔려 있어 혹시 남자 팔짱이라도 끼고 나타나면 회사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어  결코 좋을 것이 없었다. 초록바지는 지금 나를 사귀고 있었지만 조신하게 처신하다보면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가 있었고 행여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님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곳 직장에도 서울서 좋은 대학 나오고 집안이 좋은 장가 안 간 젊은 엔지니어들이 직장을 따라 내려와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한 사내를 만나 좋아서 죽자 사자 해도 남녀 간의 관계라는 것은 언제 우리가 그랬느냐는 식으로 서로를 비난하면서 돌아설 수 있었기에 모든 경우의 수와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했다.

 

남자도 물론이지만 특히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가 중요했다. 지금 아무리 잘 나가는 여자라도 결혼해서 아이 낳고 기르다 보면 언제나 자신과 아이를 잘 보호해 줄 더 멋진 왕자님이 필요했다. 골키퍼가 있다고 해서 골대에 공이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남편이라는 작자가 찌질이 처럼 못나게 굴면 불안을 느낀 여자는 다른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자 했다. 남자들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를 모르는 여자를 감시하면서 의연한 척 행동을 하지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여자의 질투가 무섭다고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남자들의 질투였다. 남자들의 질투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불 같은 것이었다. 이쁘게 피어난 꽃마저 꺾어 버리고 잘되어 가는 일도 이판사판 깽판을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 남자의 질투였다.세속의 사랑은 어차피 물고 물리며 서로를 감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상대를 나에게 묶어 두기 위해 숨넘어 가는 순간까지 기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울산으로 내려간 나는 그곳에서 학원 강사 자리를 얻었다. 학교 선배가 부동산 중개사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민법 강사가 그만두는 바람에 나를 민법 강사로 소개한 것이다. 태화강변이 멀지 않은 곳에 하숙을 얻어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말이 학생들이지 모두 나이가 사십 오십대 이상의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이었다. 그러니까 형님, 아버지, 누님 어머니 뻘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민법과목을 강의했다. 민법은 중개사 시험에서 비중이 있어 학원에서 내 위치도 그만큼 컸다. 시쳇말로 학원이 망하고 살고는 민법강사에 달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내가 그곳에 가게 된 것도 전번에 있었던 민법 강사의 강의가 시원찮아 수강생들의 반발로 강사가 쫒겨 나가는 바람에 급히 내가 대타로 들어 간 것이다.

 

 면접을 볼 때 원장이 내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며 아저씨 아줌마들을 능숙하게 이끌고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다. 앞선 민법 강사도 나이가 들고 날고 긴다는 사람이었지만 막상 쫒겨 나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나를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첫 강의부터 수강생들을 휘어잡았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강단에 선 선생이 학생을 장악하지 못하면 강의는 그 길로 물 건너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을 강하게 먹고 밀어부친 덕분이었다. 고시공부 덕에 평소 민법을 많이 공부했던 터라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고 학생들의 머릿속에 속속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때부터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누구는 나를 두고 서울 S대학 법과를 나왔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젊고 핸섬한데 S대학을 나왔다는 소문이 돌자 젊은 아가씨나 딸을 둔 어르신들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민법에 불만을 가지고 떠나간 수강생들이 다시 학원으로 몰려오자 원장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싱글벙글거렸다.

 

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나는 그들로 부터 지혜를 배웠다. 나이 오육십이 다 되어 공부를 해 보겠다고 덤벼드는 것을 보니 인생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개중에는 일류대학을 나와 대기업 중역을 했거나  화려한 스펙을 쌓아 올렸던 내공 있는 많은 어른들도 있었다. 나는 수강생들로 부터 대학교수 이상으로 대접을 잘 받았다. 그래도 선생이랍시고 수업을 파하면 살기가 넉넉한 사람들은 일식집으로 나를 초대하여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었다. 나는 고마워 민법을 잘 할 수 있는 방법같은 것을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고 애를 썼다.

 

좋은 기억들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덫없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강사생활은 광대의 생활이었다. 수업을 하는 동안은 강의실에서 내 세상처럼 행동하다가 강의실에서 나와 어둠이 내린 울산의 밤거리를 걸으면 쓸쓸했다. 내가 진정으로 매진해야 할 고시공부는 밀쳐놓고 돈을 벌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늘 따라다녔다. 정서적으로 힘들게 느껴질 때면 울산의 술집들을 기웃거리며 훓고 다녔다. 번화가에 있는 쓰리나인, 카사블랑카, 잉카의 마담들은 내 얼굴을 보고 외상술을 주었다. 나는 불안감이 밀려들 때면 가끔씩 폭음을 했다.

 

이때 나는 삶의 견고한 모토가 없는 자에게 돈이라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그것은 해독을 사는 수단이 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의 대가로 대기업 과장 이상의 월급을 받았지만 술을 퍼대는 바람에 일주일을 살지 못하는 달이 허다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나를 보면 총각 이제는 술을 좀 그만 마시라고 할 정도로 내 건강을 염려해 주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초록바지에게는 불안을 안겨주는 나쁜 남자였다. 울산에 내려와서도 초록바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술에 빠져 살며 삐딱 선을 타자 초록바지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초록바지는 연락을 좀체 하지 않는 나를 향해 갑자기 사람이 이상해졌다고 불평을 해대었다. 내 주변에는 여자들이 많이 꼬였고 초록바지가 직감으로 내 행동거지가 수상함을 눈치채고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도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 중 젊은 아가씨가 저녁을 먹자고 하여 그녀를 따라 나와 어쩌다 방어진 밤 바닷가에 와 있었다. 한 잔을 걸친 후 우리는 해변가에서 파도가 철썩거리는 바다를 앞에 두고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 선생님은 서울서 모시고 내려 왔다던데 그 소문이 맞나요?

 

- 하하, 어떤 사람들이 그래요?

 

- 서울에 있는 S대 법대를 나왔다고. 그래서 실력이 대단하신 분이라고 ...

 

- 다들 잘 모르면서 하는 소리예요, 노코멘트!

 

 

그녀는 마치 형사가 범죄 혐의가 있는 자를 취조하듯이 이것저것 따지듯 물어 보았다. 원래 처음부터 호기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나에게 관심이 많은 건지 몰라도 아무튼 그녀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 선생님 가족관계는 어찌 되세요?

 

- 그렇게 묻는 그 쪽이야 말로 가족이 어떻게 되요?

 

- 저는 가족이 참 많아요. 아이만 한 사 십 명 정도...

 

- 아이만 사 십 명?!, 그렇다면 학교 선생님?

 

- 예, 벌써 7년째 되었어요

 

- 그런데 부동산 공부는 웬거죠?...

 

- 그냥, 자격증 하나 쯤 따 놓으면 나중에라도 좋을 것 같아서요. 부동산 공부가 재미있고 적성에도 맞아요!

 

조금은 엉뚱하게 보였지만 매우 현실적인 아가씨였다. 내 타입은 아니었다. 파도가 철석거리며 밀려와 부서지고 있었다. 내가 술에 잔뜩 취해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자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윗도리를 벗어 내 어깨에 둘러주며 몸을 기대왔다. 그녀의 옆구리와 골반이 나의 옆구리와 골반에 밀착이 되었다. 이 정도가 되면 이미 무언의 승낙이 내려지고 있었다. 술이 한 잔 들어 간 김에 서로의 입술을 더듬고 옆으로 쓰러져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학원이기는 했지만 선생이었고 그녀는 나에게는 학생이었으나 학교로 돌아가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선생끼리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정한 개들처럼 아무데서나 붙어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싫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아이들처럼 순수한 면이 있어야 했으나 근무 7년차라서 그런지 능수능란했다. 그녀는 나를 마치 자기 반의 남자 아이 하나를 다루듯이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여선생을 가르치는 민법강사가 아니라 이건 거꾸로 그 선생님반 아이가 된 기분이어서 그짓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해도 감정이 되살아 나지 않았다. 일종의 정신적인 불감증이 이런 것일까?

 

남자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대하는 여자가 좀 고분고분하고 신비감이 들어야 좋았다. 그래야 자빠뜨려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상한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몸을 기대며 접근을 해 왔으나 나는 슬금슬금 도망을 치고 싶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들며 대-쉬를 했지만 나는 거리를 좁혀주지 않았다. 애교를 가장해서 치근거려왔지만 호응하지 않는 나의 침묵이 그녀의 급한 발걸음을 묶어 두었다. 그녀는 아마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차가 끊어진 열한 시가 훨신 넘도록 날 잡아 잡수라며 몸을 내 던지던 그 여선생님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여선생은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번 내 수업 시간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같은 것에게 대-쉬를 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 성에는 차지 않았다. 나는 이상만 높았으며 시집장가 가서 잘 살아 보기 위해 돈이 있거나 좋은 직장을 가진 상대에게는 아직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겸손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교만했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사내였다. 야생마게는 오직 세월만이 약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모난 나를 두루뭉실하게 연마해서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도록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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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민법강사 님 열 지대루 받으셨군요 ㅋㅋㅋㅋ
    초록바지는 봄날을 만끽중에다 젊은 낭만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요.

    2014.03.18 23:02 댓글쓰기
  • 열정

    맞불을 놓는 기분으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초록바지에 대한 반발로 방황하는 것이죠. 먼 곳 까지 와서 만났으면 잘 지내야 할 것인데... 아무튼 남녀 관계라는 것은 기기묘묘합니다요^^

    2014.03.19 08:59 댓글쓰기
  • 별따라

    맞불작전~~재미있게 읽고갑니다^&^

    2014.03.19 17:17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