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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거름은 도처에 있었다.   

 

 

요양원에 수용된 남자 가운데 사 십 줄에 들어선 김대길 이라는 환자가 있었다. 귀한 집 자식으로 고등학교 졸업반 때만 해도 반에서 1-2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헷가닥 하고 돌아버려 이곳에 들어 온지 벌써 22년째가 되었다고 했다. 아이던 어른이던 모두 그 사람을 보고 '대길이, 대길이' 라고 불렀고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돌았다고들 했다. 대길이는 늘 따뜻한 볕이 내려 쪼이는 양지바른 모퉁이에 앉아 글이 인쇄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대길이는 요양원 내에서는 그래도 몸이 성한 축에 속해 아저씨의 보조로써 소와 축사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대길이 부모들은 대길이를 이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장가라도 보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때는 대길이는 신수가 멀쩡하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나 갑자기 소를 삽으로 찍어서 상처를 입히는 일이 가끔 있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대길이는 병이 다 나아서 요양원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들 했다. 그래서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부모들 따라 집에 가서 장가를 가도 되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대길이가 갑자기 삽으로 돌보던 소를 내려찍어 소의 몸에서 피를 흘리는 난리를 한 바탕 치르고 나면 그 말들은 다시 쏙 들어가 버렸다.

 

 

- 대길아, 예쁜 대길아, 내일 너거 아부지하고 어무이가 면회 오면 따라서 집에 가거라

 

 

- 예, 예

 

 

대길이는 물으면 무조건 '예, 예' 라는 말 이외에는 다른 말을 잘 하지 못했고 여러 번 따져 물으면 조금 더 몇 단어를 붙여서 말하는 정도였다. 다음날 오후 대길이 부모는 면회를 왔다. 대길이는 외동아들이어서 부모들의 애는 더 탔다.

 

 

- 대길아, 잠은 잘 자고?, 밥은 마이 묵었나?

 

- 예, 예

 

- 지내는데 어디 아픈 데는 없꼬?

 

- 예, 예

 

- 엄마하고 인자 집에 가면 안 되겠나?

 

- 예, 예

 

- 대길아 내가 누군지 알.겠.나, 어매 알아 보겠나? 내가 누꼬?, 대길아 내가 누꼬?

 

- 잘... 모르겠는데요..

 

- 몰~라!, 이 자슥아! 지 어매도 몰라보고 이 일을 어찌 할꺼고! 아이~고!, 아이고!

 

 

 

 

 

자기 아내와 아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대길이 아버지의 얼굴에는 한 숨 소리와 더불어 깊은 수심이 깔렸고, 모른다는 이야기가 떨어지자 대길이 어머니는 장탄식을 하면서 땅바닥에 풀썩 하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이번에는 꼭 대길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원장과도 이야기를 마친 상태였다. 대길이는 부모들이 면회를 하고 가면 다시 정상적인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아저씨 말로는 평소 대길이가 사람들 말끼도 다 알아듣고 일을 한 번 시키면 영민해서 척척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요양원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대길이를 지켜보아왔던 아저씨는 대길이가 이곳에서 22년을 살았기에 이제 이곳을 벗어나 자기 부모들 따라 집으로 들어 간다고 해도 여기만큼 자유롭게 잘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길이 에게는 정이 들어 이곳 만한 곳이 이 세상에는 다시없을 것이었다. 정신이 돌았다는 대길이가 수용환자들을 돌보고 소를 돌보는 한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곳은 요양원에서였다. 나는 대길이가 이곳에 계속 남아 생활할 수 있기 위해서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끔 공부방 문을 열고 나와 소여물을 삶거나 소 우리를 청소하는 대길이를 유심히 살펴보아도 전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아저씨의 이야기가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부모가 돌아가면 대길이는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이곳에 자신의 페이스를 유유히 이어갔기 때문이다.

 

 

대길이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환자들과 자신이 돌보는 소와 함께 묻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대성리 고분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그렇게 순장을 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나 이곳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자신도 같이 묻히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이제 세상으로 나가 보아야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것 이외에 대길이가 받을 수 있는 다른 대접은 없었다. 그는 이 터에 묻힌 가야인들 처럼 이곳에서 깨어지고 부숴진 사람들과 함께 최후를 맞고 싶었을 것이다.

 

 

삶에서 환경이 조금 좋고 나쁨이 별 대수가 아니었다. 대길이 처럼 속 편하게 살다 가면 그만이었다. 그것을 보고 애처롭느니 어쩌니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다 가루로 부숴져 먼지로 천지를 떠돌 것인데 이땅에서 살면서 좀 사람다운 시늉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삼시 세끼 굶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면 무슨 상관이랴. 대길이는 이곳 요양원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나가 상처받고 짓밟히고 병신이 되어 들어 온 사람들을 보면서 결심했을 것이다. 나가서 상처 받고 또 다시 들어오느니 지금처럼 편하게 살다가 이곳에 자기의 뼈를 묻겠다고. 

 

 

신정연휴를 택해 초록바지가 하루 시간을 내어 내가 있는 이곳으로 왔다. 때마침 신년을 맞이하여 이곳에서는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다. 수로왕릉에서는 시화전이 열렸고 문화회관에서는 문학 강연이 열리고 있어 그 행사에 참여하면서 신년을 맞이 하기로 했다.

 

초록바지는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부터 초록바지는 조금 조금씩 나를 향해 접근해왔다. 때로는 여자의 자존심을 짓밟히고 마음도 많이 상했을 것인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는 자신의 사랑이라고 천명하며 안개처럼 주위를 포위하듯 다가왔다.

 

 

나는 힘없는 여자들이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인내뿐일 것이라고 여기며 그런 초록바지의 움직임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하지만 초록바지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내하기 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장기전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인내하기로 작정을 하고 세월을 넘어 온 것이다. 초록바지의 일심(一心)l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금방 성했다가 쓰러져가는 여름 한 철 잡풀의 모양새가 아니었고 길고 오래가는 나무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리고 웬만한 것은 품고 넘어가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깊고 둥근 큰 항아리 같은 포용력이 돋보였다.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된 부부나 오누이처럼 팔짱을 끼고 거리낌 없이 서리가 내린 김해 들판을 쏘다녔다. 그 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문학 강연회에서 들은 시 한수 였다. 

 

 

 

길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살고 싶다.

수없이 밟히 우는 자의

멍든 아픔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 햇살에

천진스레 반짝거리는

이슬처럼 살고 싶다.

한숨과

노여움은

스치는 바람으로

다독거리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감사하며,

욕심 없이

한 세상 살다가

죽음도

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여,

흔적 없이

증발하는

이슬처럼 가고 싶다(황선하, 이슬처럼, 전편)

 

 

 

 강연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전에 대학 축제의 밤에서 레인코트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초록바지의 손을 꼭 잡고 만지작거렸다. 오랜 시간 난방이 되는 실내에서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손에서는 땀으로 촉촉한 물기가 배어 마치 사랑을 나눈 두 남녀의 젖은 알몸이 연상되었다. 촉촉하게 젖은 초록바지의 손을 잡고 있자니 이상하고 야릇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이전에 초록바지와 관계를 할 때 초록바지의 음문에 머리를 박고 그곳을 파면서 어미개가 새끼 몸을 핥아 줄 때처럼 핥아 대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시인이 등장해서 시를 암송하는데 분위기가 젖어 들어 두 눈을 감았다.  이곳에 와서 생활하는 동안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정감을 느꼈다. 길가에 마주치는 한 송이 꽃과 길에 밟히는 풀,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한 없이 작고 불쌍한 존재였다. 산책을 나가서도 늘 떠오르는 생각이 지금은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지만 한 순간 잘못되면 요양원에 들어올 수도 있는 그런 경계에 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신세라는 것이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나야말로 풀잎에 맺힌 이슬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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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헐!
    뭔 내용이 이래...읽어 내려오니 어제 제가 아래글을 못 읽었군요 ㅋㅋㅋ
    다시 내려갈랍니다 ㅋㅋㅋㅋ

    2014.04.03 23:1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올라왔시유! ㅋㅋㅋㅋ
    대길이, 이름도 참 좋구먼, 어쩌다 외아들이 저런 처지로 전락했나 ㅠㅠㅠ
    부모님 무너지는 억장을 어찌하리요...

    2014.04.03 23:24 댓글쓰기
  • 열정

    대길이 생각이 납니다. 전투경찰시절 절도범을 잡아 포상휴가를 갔던 대길이. 코가 컸고 잘 웃었던 졸병이었는데 .... 코가 커서 대성할 것이라고 하던 대길이^^

    2014.04.04 19:35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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