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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초록바지에게 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알려 준 이후 둘 사이에는 한 순간 침묵이 흘렀다. 내가 고시에 합격했으면 초록바지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해야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지 못했다. 설마? 하던 고시합격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니까 남자 쪽인 내가 어떻게 나올지 아무소리하지 말고 기다려보자는 심사였다. 하루에 두 번 오던 연락도 한 번으로 줄고 이제는 그것마저도 끊어지고 말았다.

 

 

내쪽에서 전화를 하지 않으면 이러다가 둘은 헤어질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아마 장모자리의 계책이었을 것이다. 내가 초록바지에게 마음에 있으면 연락을 할 것이고 합격했다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염두해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납작 엎드려 기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정이 변한 후에 우리쪽의 태도를 시험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바지나 장모될 자리는 평소 내가 시험을 준비한다면서 자기 딸과 만나는 것을 줄이며 애를 태우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해 오던 터였다. 오랫동안 시장 통에서 장사를 해와서 그런지 분수에 넘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않는 사람들이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 집의 가훈이라는 말을 초록바지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쓸 것 안 쓰고 아끼며 한푼 두푼 노력하여 성실하게 모아서 자기 분수껏 사는 것을 제일로 쳤으며 남의 떡을 크게 보거나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 보아야 상처만 입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가정교육은 초록바지에게도 대물림 된 듯 했다.

 

 

 초록바지는 고시공부를 한다며 내가 힘들어 할 때면 격려를 해 주기 보다는 세상사 세끼 밥 먹고 살면 그만인데 무얼 하러 그렇게 힘든 공부를 하느냐며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나 이루지 못할 큰일에 힘을 써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레인코트와는 정반대였으며 나는 이러한 초록바지의 소극적인 태도가 못마땅했다. 

 

  

어쩌면 내가 초록바지와 사귀고 있을 때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결과가 그런 걸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초록바지도 전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레인코트에게 푹빠져 있을 때에도 나를 나를 기다려 주었으며 레인코트와 헤어지고 나서도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 주었다. 초록바지는 내가 레인코트에게 한 눈을 파는 동안 수년 동안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내며 오로지 나를 향한 일심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그런 그녀가 밉지만 귀한 존재이기도 했다. 

 

 

초록바지의 나를 향한 일심과 인내는 기어코 역사를 한 것이다. 레인코트와 비교할 때 초록바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고 레인코트는 나보다 오히려 두 살 위였다. 레인코트는 나를 사랑한 여자였고 초록바지는 내가 사랑한 여자였다. 레인코트는 무척 힘이 든 사랑을 하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초록바지는 이제 내 사랑을 받으며 법조인의 부인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당연지사였지만 초록바지 집에서는 결혼을 하게 된다면 빨리 서둘러 버리려고 했다. 이미 알 것 다 알아버린 상태고 내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 했다. 그 쪽에서는 봄에 군법무관으로 입대를 하기 직전에 바로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였다.  

 

 

나는 먼저 부모님과 가족들을 설득해야 했다. 나는 집안의 희망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수험생활동안 초록바지가 수년을 내 곁에서 함께 해 온 일을 상기 시키며 내가 그런 초록바지를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살아오면서 배신하는 정치인이나 사람들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왜 그런 비유를 이 일에다가 끌어다 대느냐며 불평했다. 이런 기회는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집안이 좋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힘이 들 때 나를 밀어 주겠다는 넉넉한 집안에 장가를 가야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그럴 수 없다고 맞서자 엄마는 화가 났는지 지난번 처럼 '병신같이 못난 놈' 이라고 퍼부었다. 엄마는 당신이 자식을 못되게 하는 줄 알고 그러느냐며 왜 어미 말을 곧이듣지 않느냐고 분개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초록바지 집에서 봄에 결혼을 하기를 원하니 그렇게 하자고 설득하고 나섰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쉽게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어 아이들 낳고 사는 것 같았는데 내가 이런 입장에 처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가는 주변의 결혼한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이런 경우의 결혼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지 입을 가진 사람들은 죄다 한마디씩 했다. 혼수나 예단도 상승한 신분에 상당하는 준비를 해 와야 한다는 훈수들이었다. 살다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에 목숨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세상이 모두 공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바램과 노력이 적었다 하더라도 그 이상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인간들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었다. 조물주가 보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차별해서 내려주는 은혜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왜 그런가 하고 왈가불가 이유를 따져서는 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력한 댓가와는 다른 이유로 그냥 이뻐서 주는 것이다.

 

 

 초록바지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녀는 내 출세를 외면하였지만 조물주는 내 고시합격을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조물주는 그녀가 어떤 길로 가더라도 그 분의 장중에 품으면서 초록바지의 출입을 지켜 주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진짜 복이었다.

 

 

나는 진통을 겪은 후 최종적으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장모자리를 만났다. 나는 그쪽 집에서 원하는 바대로 4월 초 법무관 입대 전에 결혼을 하겠으니 그렇게 알고 날짜를 잡으라는 우리 집의 뜻을 전해주었다. 장모는 감동하는 눈치였다. 이 문제를 놓고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보아야 사태가 변질될 우려가 있었기에 서두르기로 한 것이다. 모두들 기뻐하였다. 장모 자리를 만나고 늦은 시각 초록바지의 집을 나왔다.

 

 

내가 초록바지에게 완전히 기울은 행보를 보이면서도 남편과 별거 중인 레인코트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올라와 주기를 바라는 레인코트의 환영이 떠올랐다. 초록바지와 결혼을 하기로 해 놓고도 나는 레인코트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만나면서 레인코트의 처지를 헤아려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나는 초록바지를 내 수중에 넣은 다음 이제는 여유롭게 레인코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내일 명희와 함께 서울로 한 번 가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과거 아쉽게 헤어진 애인을 그녀가 지금 어려운 처지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하는 것을... 이런 행동은 자초해서 복잡한 일을 즐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타버린 불씨를 다시 피우는 일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앞뒤를 따지고 먼 일을 생각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만 울고 있는 레인코트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고 싶은 급한 마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불구덩이 속으로 기름을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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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레인코트를 맘에 두고 있다면 초록바지를 더 힘들게 하지 말지.
    실상 레인코트랑 어쩌자는 건지...

    2014.04.11 14:57 댓글쓰기
  • 열정

    자기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엄벙덤벙 대는 것 같아 염려가 되네요. 레인코트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알겠지만 정말 걱정입니다요...

    2014.04.11 19:2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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