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어느새 나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명희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서 레인코트를 만나야 겠다고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집에서도 몰랐고, 초록바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군 법무관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두어 달 정도 시간이 남아 있어 설악산과 강원도 일대를 돌아보면서 머리를 좀 식히고 오겠다고 말했다. 레인코트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때는 내 모든 것이었던 그녀가 나와 헤어져 믿었던 남편에 치이고 세파에 쓰러져 흐느적거린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 아이는 아니지만 어린 것을 데리고 남편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남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인코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온갖 생각이 머리에 다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침에 서울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서자 아버지가 길을 막아섰다.

 

 

 

 

- 너 오늘 꼭 가야하냐? 꿈자리가 하도 이상해서 그런다

- 무슨 꿈인데 그러세요?

- 어제 밤 이빨이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빠지더구나, 참 희한안 일이지...

- 꿈하고 현실은 반대라고 하잖아요

- 한 개도 남지 않고 몽땅 빠지는 건 처음이야, 하도 생생해 서리...

- 아버지, 다녀올께요

- 오늘 안가도 되면 내일 가거라, 하도 수상해서 그런다

- 오늘 가봐야 해요, 꿈인데 별일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 애비가 하는 말을 들어! 내가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구...

 

 

 

 

아버지의 우려와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막상 집을 나섰지만 뒷머리가 땡기는 기분이었다. 요즘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은 아버지의 충고도 있었을 뿐만아니라 한동안 소식이 없던 명희의 전화가 오던 날 유리잔을 방바닥에 깨트리던 일도 불길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지금 레인코트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초록바지를 두 번이나 배신하는 일이었다. 더우기 초록바지와는 4월에 결혼을 하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조의 의무는 이런 것도 포함이 되리라. 결혼할 상대 이외에 이성을 만나 살을 섞고 마음을 주는 것만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끝난 옛 애인을 찾아가 그녀의 불행을 동정 한답시며 설쳐대는 것도 불륜이라면 불륜이었다.

 

 

 

 

나는 명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었다. 내 차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기에 나는 차에 올라타 전철역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집을 나올 때까지 고민이 되었으나 굴러가는 차에 올라타자 방향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구서동 전철역 앞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9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명희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 여기예요!, 여기!

 

 

 

 

명희는 노란색 바탕에 분홍 땡땡이 무늬가 들어간 블라우스와 넓은 주름치마를 입고 나왔다. 선글라스를 걸치고 창이 넓은 모자를 쓴 폼이 완전히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공항패션이나 바캉스 패션이었다. 나는 명희 앞에 차를 세우며 물었다.

 

 

 

 

- 어, 명희씨!, 오래 기다렸어요?

- 아니,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 어서 타요! 뒷좌석에 타세요.

- 아, 와 주셨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톨게이트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아침에 떠나 서울에 도착해서 레인코트와 함께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희도 나를 데려다 준 뒤 점심만 먹고 남편과의 약속장소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평소에도 나는 속도광이었다. 속도계는 시속 150을 가르치고 있었다. 슬쩍 180까지 밟아 보았다. 핸들이 조금 더 떨리는 외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며 차는 미끄러지면서 서울을 향해 쏜살 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명희 집은 동래 쪽이었다. 고모의 소개로 지금 신랑을 만났는데 신랑은 군인이었다. 자기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타입인데 아무래도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절도 있는 군인이 책임감 있게 가정을 잘 꾸려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발령이 잦았는데 곧 임지가 진해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 그 때가서 두 사람은 합치기로 하고 지금은 혼자 부산 처가에서 명희 혼자 살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거나 레인코트를 볼 일이 있으면 가끔씩 서울로 가서 레인코트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고 했다. 나는 명희가 신혼이나 다름없는 새댁인데 신랑은 경기도에 두고 자기는 천리 길 부산에 떨어져 사는 것이 안 되어 보였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그리고 내가 마치 전능자라도 된 듯 했다. 서울로 가서 레인코트를 만나기만 하면 레인코트가 겪고 있는 얄궂은 운명과 생의 아픔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라도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무조건 빨리 올라가서 레인코트를 만나고 싶었다. 명희를 태운 차는 마치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처럼 앞 차들을 수없이 추월하며 곡예를 하면서 레인코트가 있는 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경부고속도로 경주 인터체인지 부근을 지나 서울 방향을 향하는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상행선과 하행선의 찻길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정작 있어야 할 중앙분리대는 없었다. 차가 차선을 벗어나 앞차를 추월하여 앞으로 쭉 달려 나가는 찰나였다. 순간 맞은편에서 산처럼 육중한 그림자가 차장을 덮쳐왔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 뻐~어~ 어~어~엉!!!

 

 

 

 

청산의 차는 갑자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11톤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해 버렸다. 트럭에는 호주에서 수입해온 쇠 절구통을 산더미같이 실려 있었다. 과적을 한 11Ton 트럭과 시속 150키로 이상을 달리던 청산의 차가 서로 반대방향에서 받았으니 승용차는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버렸다. 금새 짜고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에 번졌고 부서진 헤드라이트의 조명등 잔해와 흘러내린 기름으로 현장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저 멀리 여러 대의 앰뷸런스와 경찰 순찰차의 경광등이 급히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그날 신문과 방송에서 시간마다 경부고속도로 상에서의 충돌사고를 일제히 보도해서 항간에 그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현장에서 승용차에 탔던 두 남녀가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충돌 때의 충격이 심해서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되었다. 누가 중앙선을 넘어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모든 책임은 죽은 청산의 일행에게 전가되었다. 죽은 자는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사라져야 했으며 아직 이 땅에 산 사람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살아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수근 거리며 이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갔다.

 

 

 

우스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가당치도 않는 말들을 만들어 내고 옮기기에 바빴다. 세상 사람들이 뜨거운 밥을 먹고 한다는 짓거리들이 모두 이와 같았다. 살아 있는 자들은 살았다는 특권으로 죽은 지 만 하루도 안 된 사자들을 마음대로 난도질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사실을 밝히고 반론해야 할 당사자는 죽어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불륜을 저지른 젊은 예비법조인과 미모인 현역장교 아내의 성 모럴을 이야기하며 나름대로 입방아를 찧어대며 열들을 올렸다.

 

 

 

청산이 아쉬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산은 모든 것을 다 성취하고 맛보았다. 시험에 합격하여 명예에 대한 갈증도 해소하였고 이런 저런 결혼 제의로 부유함을 보장받을 수도 있었다. 레인코트와 초록바지 같은 여자들의 자궁에 들어가 재미도 보았으나 이 모든 것들은 꺾인 나무 가지가 불살라져서 재가 되는 것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짓들은 모두 이처럼 허접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램 만큼은 수긍이 갔다. 피조물이 이 세상에서 한들거리는 바람을 맞고 온갖 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단풍을 바라보며 한 철이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그 바램 만큼은 누가 보더라도 경청해 줄만 했다.

 

 

이 땅은 푸른 모래톱이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말했지만 이곳에는 정작 그리움만 잔뜩 있었다. 다만 눈부신 모래톱을 찾아 나서는 그 길의 여정만이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 나이가 들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력을 잃고 쓰러져 갔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일들을 계획하였지만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듯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간간히 땅을 적시는 가랑비가 흩날렸다.

 

 

 

 

 

- 오빠야!~아, 일어나서 나하고 집에 가자~, 오빠야!~, 왜 여기 이러고 있어어!, 왜에!?

 

 

 

평소 청산을 잘 따랐던 여동생이 오열했다.

 

 

 

화장장 직원들이 청산의 시신이 든 관을 불구덩이 가마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순간 그 앞을 막아서면 청산의 어미가 다시 울부짖었다.

 

 

 

- 청산아, 가지마라!~ 썰어도 아픈 줄 모르고오오, 태워도 뜨거운 줄 모르는데에, 그 불구덩이를 왜, 들어가려구 그래! 안 된다아! 청산아~아, 안 돼. 가지마라, 가지마아~아!

 

 

 

 

청산은 서울로 레인코트를 만나기 위해 올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운명을 다한 사랑을 그리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주제넘게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끊임없이 넘보았다.

 

 

 

화장장 굴뚝을 통해 그의 살과 뼈를 태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살아서 내일의 빵과 오늘의 슬픔을 추억하며 흔들리며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가야 할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 때 하늘에서는 준엄한 목소리가 땅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 너희들은 이 땅에서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을 쉬지 않고 맞으리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끝).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인생사 허망하군요.
    이렇게 될 줄을 몰랐기에 속도를 높이고 마음이 들떠서 레인코트를 만나러 갔겠지요. 애당초 레인코트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고, 결혼날짜를 받아놔도 마음이 덜 가는 초록바지같은 사람은 안사람이 되어도 마음이 머물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2014.04.13 23:30 댓글쓰기
  • 열정

    레인코트는 청산의 잔잔한 삶에다 돌멩이를 던져 삶의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입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우리가 만나 사랑하고 출세를 한다고들 하지만 다들 허망한 것들이지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 유한한 것, 한 바탕 꿈과 같은 것, 청사포와 같은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4.04.14 05:11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