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위로를 받다
연암 박지원의 글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호곡장론’ 이옥의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나도향의 ‘그믐달’ 등은 찾아서 즐겨 읽는 글이다. 이 글들을 통해 글이 담아야할 그 무엇에 대해 하나씩 알아간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매우 흥미로운 글을 쓰는 이를 만났다.
저자도 저자의 글도 늦은 만남이다. 이미 이 세상과 이별한 사람이라 만날 수 없지만 그의 삶의 본성이 담긴 글이 있어 늦은 만남을 할 수 있었다. "죽어서 살아 돌아온 수필가" 라는 이 표현이 담고 있는 것은 뒤늦게 주목 받았다는 이야기 일 것이니 무엇이 어떤지는 접해봐야 알 것이다.
목성균은 “1995년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 시적 언어 구사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작고 하찮은 것, 평범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명력 있는 수작들을 빚어내어 2003년 『명태에 관한 추억』을 출간하는 등 의욕적으로 작품을 쏟아내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수필가”라고 한다. ‘누비처네’는 그가 남긴 수필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천상 이야기꾼이다. 짧은 글 속에 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도 풀어내고 있다. 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손자를 앉혀놓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과 같이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지극히 사소한 대상에 주목하고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의미를 갖게 되는 계기를 잡아내 삶의 희노애락을 다독이고 있다. 애써서 웅변하지 않지만 글이 가지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억 속 가물거리던 추억이 현실로 되살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게 하지만 그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때 내 손을 꼭 잡던 자기 얼굴을 달빛에 보니 깎아 놓은 밤 같았어.” (누비처네)
“심지는 깨끗한 창호지로 하는 거여. 그래야 맑은 불빛을 얻을 수 있지. 심지 굵기는 꼭지에 낙낙하게 들어가야 해. 굵으면 꼭지에 꼭 끼어서 기름을 잘 못 빨아올리고, 가늘면 흘러내리느니. 그리고 꼭지 끝에 불똥을 자주 털어 줘야 불빛이 맑은 거여.” (등잔)
“곶의 안쪽이 만灣이고, 포구는 만 안에 있다. 곶이 만을 감싸고 포구는 남편 잘 만난 아낙네처럼 얌전하게 만의 품에 푹 안겨 비 맞고 몸부림치는 곶 끝의 으르렁거림에도 불구하고 혼곤하게 잠들어 있다.” (장마전선을 넘어)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만나는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아 다시금 글 속으로 이끌어간다. 문장을 건너가는 호흡이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놓치지 싫은 감정이 이입되어 자꾸만 문장 사이에서 멈춘다. 상황을 묘사하는 탁월한 문장에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다 속으로 ‘그렇지’, ‘아...맞다’ 와 같이 맞장구를 친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사람 살아가는 일은 겉모습의 달라짐에 있지 않다. 서로 의지하고 아껴주며 울고 웃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근본 바탕엔 무엇이 깃들어 있어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의 글은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다독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