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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의 사람

[도서] 오후 세 시의 사람

최옥정 저/최영진 사진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오후 세 시,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볕 좋은 가을날의 오후가 볕바라기를 하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만큼이나 여유롭다. 가을이 주는 독특한 햇살의 질감이 얼굴에 닿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이 햇살의 질감은 봄과 여름을 무사히 건너온 여유로움이 있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계절의 가을과 삶의 가을이 닮은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 여유로움처럼 넉넉한 책을 만난다.

 

오후 세 시의 사람을 통해 사진작가 최영진과 글 작가 최옥정 남매가 건네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물음 속을 걷는다. 삼십 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글 작가 최옥정은 소설은 픽션이지만 한 줄도 삶과 동떨어진 가짜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소설은 진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걸 맞는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팽팽하게 돌아가는 일상의 긴장을 늦추고 사진과 글 사이를 서성이게 한다. 다소 느린 속도로 천천히 걸어야만 된다는 의무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여백이 넓고도 깊다. 정제된 언어로 군더더기 없는 글이 주는 담백함이 긴 호흡을 요구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는 속도는 느려지고 멈추길 반복하지만 끊어짐은 없다. 사진 한 장에 글이 한 편씩 붙어 저절로 오는 긴장감을 사진이 주는 넉넉한 여백으로 인해 풀어지곤 한다.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조합이 남매의 깊은 정을 바탕으로 한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얻을 게 없어도 시선을 붙든 것에 마음을 한참 걸어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눈)

 

눈물을 훔치려 꽃밭에 간 사람이//꽃에게서 웃는 법을 배운다” (꽃의 말)

 

나는 좋아하는 건 너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너무 싫어해서 탈이다//그리고 내 인생은 대체로 너무 좋아하는 것들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비 맞은 풀잎이 되어)

 

뭐가 써 있을까//떨리는 마음으로 펼쳤던 당신의 첫 페이지” (당신의 첫 페이지)

 

사진도 글도 느긋하지만 늘어지지 않고, 채근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다정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오후 세 시,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시간이자 볕의 온기가 까칠함은 누그러뜨리는 때다. 가을날의 오후 세 시는 그렇게 다가온다.

 

이 책에 담긴 사진과 어울리는 글들이 유독 오랫동안 서성이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또 너무 늦게 만났는지도 모른다. 글맛에 이끌려 글 작가 최옥정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018913일 앓던 병으로 인해 세상과 이별을 했다고 한다.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늦게나마 글로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억지스러운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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