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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랑은

[도서] 그리고 사랑은

황주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사랑이 쉽냐

가을산은 적막하다. 나무가 내려놓은 잎사귀들이 만들어 낸 분위기가 그렇다. 사람이 짧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가을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삶을 가을에 비유할 시기가 왔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겁거나 문득 지나온 시간이 속절없이 떠올라 멍한 상태이거나 생각만으로도 애닮은 사람이 그리울 때 그때는 분명 가을산이 주는 그 분위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라는 황주리의 ‘그리고 사랑은’을 읽고 난 후 가을 산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로 그려진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분명하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내 이야기다. 내 곁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젠 기억속에서도 가물거리는 사람과 맺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주된 흐름이어서 가을 산에서 느끼는 적막함으로 공감을 이룬다.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키위 새가 난다, 짜장면에 관한 명상, 빨간 입술, 그녀의 마지막 남자, 스틸라이프, 네 인생의 청문회, 그대와 함께 춤을, 나 하나의 사랑 등 총 아홉 개의 단편이 화가인 작가의 독특한 그림과 더불어 펼쳐지고 있다. 흔히 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모두를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짜장면에 관한 명상’은 호흡할 수 있는 공감형성이 어려운 이야기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사람, 마음에 장애를 지닌 사람,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정착하지도 못하고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한계일까?

 

이 이야기들은 사랑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겪게 된 상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의 상처는 삶의 상처와도 동일한 의미로 다가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다. 사랑해서 만나고 사랑이 아니라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기억나는 사람과의 시간이 만들어 준 상처를 안고 그 상처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일련의 몸부림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왜 우리는 늘 한 발자국 늦는 걸까?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한 발자국씩 늦게 자신의 사랑에 대해 고민한다. 지나간 사랑이 아니 떠났거나 떠나온 사람에 대해 과거에 행했던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늦은 반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소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 이와 같은 소설을 가능케 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그리워하거나 도망치거나 찾아 헤매는 것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담담함이 있지만 현실은 그 모든 과정이 고통을 동반하기에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을 산의 적막함은 아직 겨울 산의 메마른 황량함은 아니다. 나무들이 내준 잎사귀를 이불삼아 겨울을 대비하는 시간이기에 사랑에 대한 이런 적막함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맞이하는 절망이 아니라면 혹 자신에게 올지도 모를 더 큰 상처를 방지하는 예방주사가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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