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책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요즘 '돈', '주식', '부동산', 심지어는 로또 당첨이 되는 방법까지 설명해주는 책이 나오는 세상에 '빈자의 철학'이라니. 컨셉이 아주 신박한 책이라고 생각이 들어 집어들었다.
책을 사기 전 일단 작가의 글 솜씨를 파악할 수 있는 서문을 꼭 읽는 편인데,
서문을 읽고 안 살 수가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일이 아주 많은 나는 다 읽기도 전에
이미 강하게 공감할거란 예감이 들고 말았다.
"사족. 그대, 혹여, 버스나 지하철을 탈 일이 없는 금수저라면 이 책을 덮게. 이 책의 어느 부분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니."
회사 동료와 밥을 사먹고 잔 돈을 덜 받아 꽁한 에피소드부터,
어느 날 집이 짐처럼 느껴졌다는 대출 이자 에피소드,
그리고 군데 군데 너무나도 가슴을 찌르던 촌철살인 멘트들.
나, 자신 있게 말하건대 결코 안목이 없지 않네. 오히려 나의 높은 안목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왕왕 있는걸. 가격표를 보지 않고 그저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르면 여지없이 그 가게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니 말일세. 그러니 내가 안목이 없다고 할 수는 없네. 그런데 내가 가진 물건들이 하나같이 왜 그따위냐고? ‘안목’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이네. 내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물건을 골라야 하기에 높은 안목대로 물건을 살 수 없는 노릇이라 하면 믿어주려나. 철저하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고려한 소비를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말하려니 목이 메는구먼.)
지금 하게! 인생은 늙어 죽을지, 젊어 죽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간이라네.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도 말게. 그러니 되도록 ‘오늘’ 하게나. 30년 후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오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하지 말어. 오늘의 영화 한 편을 포기하지도 말고, 오늘의 강릉 여행을 뒤로 미루지도 말게나.
나이가 든다는 건 말이야. 다소 비겁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으이. 세상에 타협하고, 사회에 순응하고, 불의에 침묵하고, 옳은 것을 외면하는 일이 자꾸만 많아지는 것 같아. 당장의 적당한 일상의 안온함을 위해.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타박하면서 말일세. 나는 아무개가 맞는 것 같으이. 세상에 맞설 용기도, 열정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니. 그대는 부디 나와 다른 어른이 되길.
요리하는 성악가,
춤추는 의사,
노래하는 경찰관,
글 쓰는 간호사,
빵 만드는 회사원,
기타 치는 버스기사,
그림 그리는 판매원.
방법은 있네. 그대, 현실도 이상도 모두 품고 살게.
or이 아니라 and로
아무개 작가의 다음 에세이가 기대된다.
다음 번에는 '가난'이 아니라, 또 어떤 소재로 공감과 웃음, 감동을 줄지
기대가 된다. 세상 모든 아무개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