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삶의 주제는 죽음과 삶이다. '삶과 죽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슬프게도 '죽음과 삶'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죽음과, 죽음과, 즉음과, 즉음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일것이다. 쌓이는 절망과 허무함 속에서 책만이 나의 위로와 답이 되어 주고 있는 요즘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된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매일매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만나는 의사의 책이다.
어떤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나냐에 따라 책에서 받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본인이 암을 선고 받고 책을 만난 사람, 가족이 암을 마주하고 이 책을 만난 사람, 가까운 사람을 잃고 이 책을 만나는 사람, 그리고 연말을 맞이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인생의 교훈을 얻고자하다가 이 책을 만난 사람. 내가 어떤 위치에 있냐에 따라 이 책은 하나의 시시한 이야기거리들이 될 수 있고, 한 의사의 일기장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누군가는 또 오늘을 산다는 것에 대한 교훈을 얻어갈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특별하지 않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이 지점에 서 있는 내가 만난 이 책은, 그냥. 시시함이었다. 왜? 다른 사람 이야기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 인생에서 '특별'하지는 않지만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이렇게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무언가 느끼기는 조금 힘든 위치에 있다. 혹시 나와 같이,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인생의 위로와 답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크게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싶다. 내 코가 석자인걸.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연말과 연초를 맞이해서 죽음에 놓인 환자들, 죽음의 문턱을 오고 간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럼에도 이렇게 나는 건강하게 살아가 있고', '나의 당연한 오늘은 누군가가 갈망한 오지 않을 내일'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위에 너무 냉소적인 후기를 쓴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안 좋다는 것이 아니다. 목차만 보더라도, 이 책은 끌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암을 선고받거나, 항암이 치료가 아닌 연명을 위한 조치가 된 환자들, 우리 나라의 '죽을때까지 환자를 붙잡는' 의료체계,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그리고 다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많이 생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암을 극복했더니(그렇다면 사실 죽음을 극복했으니 무엇이나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냉혹한 현실(암을 앓은 사람이었다니, 약할까봐 채용을 꺼리는 사회 등), 혹은 당장 내일 죽더라도 사랑을 하고 싶은 내 짝궁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가, 내 주변에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갔는지, 혹은 죽기전까지 어찌했는지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면이다. 이 책의 저자도 인정한다. 60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글에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 의사에게 이 환자는 600명의 환자 중 한 명이지만, 이 환자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는 이 의사 한명만을 바라보고 있다. 600명의 환자를 쳐다보고, 진료하고, '직업'으로서 출근과 퇴근을 하는 의사.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더 늘려줄 것처럼 의사를 바라보는 환자들. 저자는 이 관계의 선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이 선에서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 한다.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끼려나? 저자는 어쩌면 자신은 600명의 신자를 가진 교주와 같은 존재로 환자들에게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으려나? 종양학과의 전문의, 특히 서울대학교 병원의 전문의라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디 600명뿐이랴. 그 환자의 가족까지, 모두 "선생님, 제 발 좀 살려주세요."하고 이 전문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의사는 교만함이 아닌, 환자들의 절실함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실제로 자신의 휴가를 이해해주지 않는 환자에 대한 서운함까지 표현하면 굉장히 솔직하게 이 책을 쓰고 있다. (사실, 당연한 것 아닌가. 의사라도 가족이 있고, 개인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라는 것도 하나의 직업일뿐이다!) 이렇게 오해받을 수 있는 것들까지 솔직하게 쓰는만큼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환자들과의 대화, 나중에 보게 된 환자들의 모습 등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앞서 이 책에 대하여 '나에게는' 크게 느낄만한 무언가는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는 지금 앞으로 오는 시간도 지나가는 시간도 모두 양 손으로 붙잡고, 과거로 가지고 앞으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힐링이 될 책이다. 잔잔하게 지나가고 있는 2022년과,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2023년을 맞이하면서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 나는 원하던 답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사람들에게 오늘과 내일, 그리고 오지 않을 어떤 날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