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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세트 한정판

[도서] 전쟁과 평화 세트 한정판

레프 톨스토이 저/박형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제목 : 전쟁과 평화 1~4권

글 : 레프 톨스토이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연도 : 2017년




전쟁 소설의 탈을 쓰고 인간의 온갖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를 유혹하고는,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쳐낸 톨스토이의 사유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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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가 장편소설도 서사시도 아니며 전혀 다른 종류의 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톨스토이님께는 죄송하게도 서사드라마, 장편소설 이외의 어떤 명칭을 붙여야할지 모르겠다. <전쟁과 평화>는 즐겁게 읽은 장편 소설이다.


<전쟁과 평화>는 파죽지세의 나폴레옹이 러시아 본토로 원정을 나갔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으로는 전체 4권으로 1권에서는 전쟁의 시작과 러시아의 대패, 2권에서는 지리한 패배와 협정, 3권에서는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던 보로디노 전투, 4권에서는 러시아의 승리와 전쟁의 종료를 다룬다.


영리하게도 1권은 귀족 사회의 허세 가득하면서도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덕분에 두꺼운 분량임에도 책장이 가볍게 넘어간다. 시작부터 돈 밝히는 중매가 오가고 호화 파티가 벌어지는데다가 불곰국 답게 곰 데리고 노는 망나니 청년들까지 등장하니 어이가 없고 실소가 나와 입이 떡 벌어진다. 만삭 부인 내팽개치고 자원입대하는 남편이 나올 때는 속에서 열불이 나서 욕하는 재미도 있었다. 1권 2부에 가서야 드디어 전투 장면이 나온다. <전쟁과 평화> 완독의 최대 장애물이 바로 1권 2부라고 생각하는데, 지루할 수 있는 이 부분을 잘 넘긴다면 완독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오합지졸의 군대는 그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앞 부분보다 더 복장터지게 한다. 예를 들어 장군이 명령을 전달하러 병사를 옆 진지로 보냈는데, 병사가 무서운 나머지 전투지역으로 안 가서 명령을 전달 못한 일 같은 게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나는 재밌었다.) 그러면서도 전쟁의 무상함과 쓸모없이 사라지는 청춘을 놓치지 않는다.


산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 있고, 나와 똑같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과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지는 않아도 다들 이렇게 느끼고 있었고, 이 느낌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특별한 광채와 즐겁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1권 280쪽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도와주는 사람도, 가엾게 여겨주는 사람도 없다. 나도 한때는 내 집에서 건강하고, 쾌활하고, 사랑받았는데.'

(중략)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을까?'

1권 384~385쪽




2권에서는 <전쟁과 평화> 보다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데, 엄청 흥미진진하다. 사랑에 빠져서 행복해 어쩔 줄 모르는 청춘 남녀를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고 흐뭇했다. 그런데 막판에 사건이 벌어진다. 역시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가 제일인가 보다.


'왜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럼 나는 비로소 완전히 행복해질 텐데.'

2권 547쪽




톨스토이는 이렇게 앞에서 읽는 사람을 확 꼬셔놓고서 3~4권에 걸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역사 속 위인들이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위인들이 자신의 욕구와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하다보니 그 작은 일들이 모두 모여 비로소 그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황제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마저 역사 속에서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3권 17쪽


역사상의 사건에서 이른바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 사건에 명칭을 우여하는 라벨이며, 원래 라벨이라는 것이 그렇듯 사건 그 자체와는 가장 관계가 적다.

자기 자신에게는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되던 영웅들의 모든 행위도 역사적 의미에서 보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전체와 관련되어 있고, 개벽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3권 19쪽




그리고 전쟁이 있든 없든 삶은 계속되며, 결국 삶이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과 평화>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다. 그래, 사랑이다! 전쟁이 끝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인간은 계속 살아간다. 앞으로도 인간은 삶을 살아갈 것이고,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야 한다.



'젊음과 체력이 이토록 넘치게 느껴질 때 나는 내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했던 피예르의 말은 진리이고, 나는 지금은 그것을 믿는다. 죽은 자를 묻는 일은 죽은 자에게 맡겨야 하며, 생명이 있는 한 살아서 행복해져야 한다.

2권 334쪽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운명은 머리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건 안 된다 저건 나쁘다 하며 불평만 하지요. 우리의 행복이란, 친구여, 그물 속 물 같은 거라서 잡아당길 때는 가득차 있지만, 올려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겁니다."

4권 77쪽


'나는 어쩌면,' 그는 생각했다. '그 무렵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인간으로 보였겠지만, 그때 나는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미쳐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의 나는 어느 때보다 총명하고, 통찰력이 넘치고, 인생에서 이해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은 ...... 내가 행복했기 때문이다.' 피예르의 광기는 예전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인간의 가치라고 부르는 것에서 개인적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사랑으로 이유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며, 언제나 그들을 사랑하기에 충분하고 명백한 이유를 발견했다는 데 있었다.

4권




<전쟁과 평화>의 장점이자 단점은 철저하게 러시아 귀족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는 점이다. 귀족들의 전쟁 이야기이기에 전쟁 속에서도 사교계 파티는 계속되고 전투 속에서도 여유가 있다. 농민들의 입장에서 쓰인 전쟁이야기였다면 <전쟁과 평화>는 훨씬 더 처절하고 끔찍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드라마도 너무 현실적이고 내 이야기같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보기 힘든 법이다. 적당히 실장님, 사장님 등장해주며 판타지를 보여주어야 즐겁게 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책 속에서 전쟁통에 피난가면서도 주인님 챙겨가며 머리 조아리는 농민들과 하인들을 보고 있자니 속 터지는 건 매한 가지다.


마무리가 살짝 아쉬운 면도 있는데, 톨스토이님께서 에필로그라고 제목 붙이고서 따라가지 못할 사고의 흐름을 잔뜩 남기셔서 그 아쉬움은 금방 사라졌다. 막판에 어려운 글을 던져주셔서 1~2권과는 다른 의미로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덧. 더 좋은 문장들도 많은데 새해에 시간도 없고,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도 해서 여기서 마친다. 마무리가 아쉬운 건 내 글도 마찬가지라서 톨스토이님의 개그감을 충분히 느꼈던 장면 하나와 가장 내 것 같은 문장 하나씩 남긴다.


좋지 않은 것은 옷이 아니라 공작영애의 얼굴과 모습 전체

1권 424쪽


톨스토이는 팩트 폭력배!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을 뿐이다, 나중에 깊이 생각해보자!' 그러나 나중에라는 것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2권 477쪽



엉엉. 톨스토이님, 내 머리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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