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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리커버 에디션)

[도서] 시를 잊은 그대에게 (리커버 에디션)

정재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가끔 시를 읽는 것을 즐긴다. 툭 던져 놓은 낱말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휘몰아침. 늘 시를 읽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시가 잘 읽히는 때는 무척 행복하거나, 반대로 처참히 불행하여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시절이다. 원시적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싶을 때, 시를 읽고는 한다. 그동안 너무 감정적으로 시를 만난터라 이제는 시를 조금 더 이성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인 정재찬이 자신이 학교에서 강의했던 '문화혼융의 시 읽기' 내용을 엮은 책이다. 교과서에서 자주 보던 약 40여 편의 시들을 소재와 주제에 따라 영화, 음악, 미술, 광고 등 다양한 예술문화와 접목시켜 소개한다. 또한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해당 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12개의 장에서 각각 가난, 별, 떠나감, 사랑, 기다림, 슬픔, 녹록치 않은 현실, 눈 등을 중심으로 여러 시를 소개한다. 하나의 시를 제시하고, 그 시가 나오게 된 시인의 개인적인 사정을 두런두런 말하기도 하고, 연관지어 떠오르는 음악이나 소설을 읊어주기도 하는데, 그 연결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다. 말로 하는 강의를 글로 엮은 책이라서 더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시에 밑줄 치고 동그라미 치고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메모하며 외우다가, 드라마처럼 음악과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시를 만났으니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편하고 즐거웠겠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제목처럼 시를 잊은 사람도 읽기 편하도록 쓰인 책이다. 저자는 시를 떠난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다시 시를 보여주기 위해 친숙함을 활용한다. 나오는 시들은 어디선가 들어 본 시들이고, 등장하는 음악이나 그림도 낯설지 않다. '2장 별이 빛나던 밤에'를 살펴 보면, 별이라는 주제를 두고 먼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소개한다. 곧 김광섭의 '저녁에'를 설명하며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림이 그의 시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걸 말해주니 그림에 또 눈이 간다. 곧 '두 개의 작은 별'이라는 대중가요를 떠올리고, 그 대중가요의 가수가 바로 윤동주의 육촌이라는 걸 언급하며, 명시 '별 헤는 밤'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성선의 '사랑하는 별 하나'라는 시를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과 팝송 'Vincent'가 나온다. 푸른 밤하늘에 노란 별 무리가 휘몰아치는 그림과 starry starry night하고 시작하는 노래는, 제목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과 귀에는 익숙할 것이다. 이런 친숙함이 시에 다가가기 쉽게 한다.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43~44쪽





저자가 시인의 삶을 통해 시에 접근하는 시도 역시 시를 읽는 사람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김소월이나 신경림의 가정사를 알게 되면 그들의 시가 쓰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원래 정사보다는 야사가 흥미롭지 않은가. 짝사랑에서도 호방함과 성숙함, 즐거움을 느끼게 한 시 '즐거운 편지'가 황동규 시인이 무려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나이에 대학생 누나를 짝사랑하며 쓴 시라는 건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렇게 짝사랑에 시 짓기에 바빠도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수재이며, 그의 아버지가 바로 황순원 작가라는, 시와는 아무 상관없는 정보도 어쨌거나 눈을 반짝이며 읽게 하는 눈요기거리가 된다.


다만, 시인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때로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내가 무척 좋아하던 시 구절이 알고보니 시인이 불륜이라는 금단의 사랑에 빠져서 썼다고 하니, 그 시마저 싫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라 해도, 저자가 그들의 사랑을 어찌어찌 포장해보려 해도 아기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나는 이런 부정 앞에 가슴이 차가워져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겠지요'라는 말은 그래, 할 수는 있지만, '유부남이나 유부녀를 사랑하는 건 죄'라고 외치고 싶다. 지치지 않고 5,000여통의 편지를 보낸 순애보도, 그 편지를 고스란히 모아놓은 정성도, 그들이 불륜이라는 걸 안 이상 내 눈에는 곱게 안 보이는 것이다. 반면, 팔순의 나이에 사별한 아내에게 바친 시를 모아 시집 <거울 속의 천사>를 낸 김춘수 시인의 시는 하나하나 마음 저리고 다 좋아 보인다. 더 이상 그 시 자체로 즐길 수 없어서 조금 슬프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책에 소개된 사진이나 그림이 모두 흑백이다. 나오는 음악도 내가 직접 찾아 듣는 수 밖에 없으니 강의가 아닌 글로 접한 것이 아쉽다. '공감각적' 강의로 들었으면 더욱 푹 빠졌을 것 같다. 그리고 예로 나온 대중 가요나 광고, 영화가 대체로 오래 전 작품들이라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을 것이다. 용각산을 알고 있는 20대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도 이것저것 찾아보며 읽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을 읽으며 즐거웠다. 잘 몰랐던 시의 세계에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다. 언젠가 들어봤지만 제목은 몰랐던 시라든지, 새로 알게 된 시, 알고 있었지만 더 좋아진 시들이 가득하다. 또, 낙화에 대해 쓴 글이 실린 김훈의 <자전거 여행>, 월남한 실향민에 관한 소설인 이호철의 <탈향> 등 책에 소개된 몇몇 글이 마음에 들어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도 늘었다.


국어 교과서와 시험 이후 잊고 살았던 시에게 다시 손 내밀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빡빡한 일상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고 내 감정과 닮은 시를 읽을 때 받는 위로와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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