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믿는 인간에 대하여

[도서] 믿는 인간에 대하여

한동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믿음에 대한 책인데, 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질까.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종교와 믿음, 신앙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풀어나가는 인문학책.

 

 

 한동일의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인문학 책이다. <라틴어 수업>에 이어 이 책에서도 저자는 신을 자신의 종교에 따라 '하느님'이라 호칭하지 않고, '신'이라 부르기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다가온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라틴어 수업>보다 저자의 삶과 여행담, 여러 고민과 고뇌가 표면으로 드러난다.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지식과 지혜, 공부하고 싶은 힘을 얻는 기분으로 이성적인 즐거움을 얻었다면,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같이 한탄하고 같이 기대하기도 하며 감정적으로 깊게 공감하며 읽었다. 내게는 의미있는 시간으로 글에 푹 빠져서 읽었는데, 아무래도 주제가 종교이다보니 전작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나뉠지도 모르겠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믿음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풀어나간다. 단순히 종교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대의 의학, 중세 시대의 요리법, 이탈리아의 교회 건축물 구조, 바티칸 시국의 건립 과정, 구마 의식,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우리나라의 헌법 등 시간과 나라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에서 신앙이 가지는 가치를 짚어나간다.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앙 실천 방법을 성찰하게 하며,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희망과 기대감'은 잃지 말자고 말한다.

 

 

나는 종교가 없다. 종교를 가져보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완전한 믿음은 갖지 못했다. 동시에 여전히 신이 존재하기를 기대하며 이런 저런 책을 들춰보고는 한다. 그래서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특히 3장 '신이 있다면 신의 큰 뜻은 '작은 것'에 있다'와 17장 '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는 내가 그동안 마음 속에서 떠올렸던 의문과 품고 있던 생각이 가득했다.

 

 

"저는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도 아닌 데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도 아니지만, 최근엔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면서 신을 만난다면 묻고 싶어졌어요. '이 고통과 괴로움이 예정된 것이라면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라고요."

(중략)

"만약 이 고난에 결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도한 걸까요? 이것이 종교적인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테러 피해자를 만난다면 하느님은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요?"

50

 

 

과연 신이 인간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은 그 자체로 완벽한 지성이므로 인간에게서 취하고 싶은 것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때로 신은 인간의 찬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인간사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는 그 괴로움을 줄이고자 삶의 대소사부터 존재론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두고 기도로 청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부족해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저는 그런 신은 믿고 싶지 않습니다.

241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비종교인들이 종교를 갖지 못하는 이유를 공감해주는 동시에 종교인들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용기 있는 글이다. 경쟁적인 기도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신을 더 기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좋다. 우리나라 헌법을 예를 들어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은 절대적 자유이나, 신앙 실천의 자유는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지는 상대적 자유이니 내가 속한 종교 공동체의 행동이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말라고 말한다.(136~137쪽) 신실하고 진실한 말과 행동이야말로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라며 스스로 자기 모습을 돌아보라는 일침이 날카롭다.

 

 

중세 시대 수도자의 식탁을 토해 오늘날 종교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 공동체가 가난해지고자 한다면 국가가 할 수 없는 사회적 어려움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부유한 종교 공동체가 그 규모에 맞는 영적 부유함을 함께 갖출 때,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을 겁니다. 선교에 목적을 둔 선행이 아니라 선행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분이 가르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을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길인 동시에 종교적 신념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과 발길이 자연스럽게 신을 찾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232

 

 

그러나 이렇게 신에 대한 의심과 종교인에 대한 비판만 있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책이었을 것이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그래도 인간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종교가 있든 없든 현재에 불평만 하지 말고, 또는 신에게 기대어 기도만 하지 말고 주변을 '바라보고', '실천하라'고 한다. 할 수 없는 일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묵묵히 하나씩 해내라고 한다. 신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인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55

 


 

책 표지를 넘기면 '별을 바라보며 걷는 우리를 위해'라는 저자의 서명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서명을 읽었을 때는 노천명의 시 '별을 쳐다보며'를 떠올랐다. 힘든 세상, 비교하는 세상, 이런 속세 따위는 뒤로 하고 저 높은 별, 순수한 꿈과 이상을 잃지 않고 살아가자고 말해서 평소 좋아하는 시이다. 그래서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본문에 나오는 '별'은 사막의 별자리를 말하는 거였다. 바람에 따라 시시때때로 길이 바뀌는 사막을 걸을 때는 길이 아니라 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걸어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허우적대며 헤맬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진리와 빛을 보며 흔들리지 말고 걸어가야 한단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런 별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한다. 노천명의 별과 한동일의 별은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다. 둘 다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한동일의 별은 조금 더 현실적이고 실천적이다. 속세를 잊자는 것이 아니라 속세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꿋꿋이 해내가며 빛이 되어보자고 말한다.

 

 

종교가 없어도 누구나 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필요로 한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그런 희망과 믿음을 무작정 남에게 기대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그래도 다시 믿고 싶어진다. 인간을, 내일을, 어딘가에 있을 지 모르는 신을.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Deus non indiget nostri, sed nos indegemus Dei.

데우스 논 인디제트 노스트리, 세드 노스 인디제무스 데이.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242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