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침묵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침묵이 너무 무거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이 예술이 될 때, 예술의 경지가 될 때를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파리에 로댕미술관에서 여러 번 서성거리며 관람했던 “대성당”
그 작품에 담겨있는 침묵은 성스러우면서도 포용력이 있고, 따스하면서도 친절했다.
피카르드는 이렇게 말했다.
“대성당은 주위를 감싸는 침묵으로 더욱 고귀해졌다.”
“대성당은 돌에 새겨진 침묵과도 같이 거대한 침묵의 저수지처럼 우뚝 서 있다. <p,33>
알 수 없는 이유로 두 개의 손이 만들어 낸 그 공간에 이끌렸고,
그 고귀한 침묵에 잠시 마음을 위로 받았다.
자연에 대한 사색도 침묵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소로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침묵만이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침묵에는 ‘토양처럼 변화무쌍한 깊이와 비옥함’이 있다.
그는 이해를 돕고자 침묵에서 건초의 효과뿐만 아니라 이끼의 침묵 구조도 분석했다.<p,43>
이끼속에서마저 가치를 찾는 그 따뜻한 눈길.
소로의 찬사에 나는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달래, 봄맞이, 민들레의 침묵의 구조도 분석해 낼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침묵하며 바라본 자연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은 ‘나뭇잎의 고요한 호흡’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풍경에 평온함, 차분함을 전했다.“<p,47>
이렇게 아름다운 구절들과 함께 침묵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나 여행길에 동반한 이 책으로 인해 그 밤의 별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소중한 사람을 아주 부드럽게 사랑하고 싶고
그에게 뭔가를 참아주고 싶을 때는 침묵 속에 그윽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침묵의 예술.
그 낯선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꼭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