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클로버

[도서] 클로버

나혜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클로버, 네 잎 클로버라면 행운의 상징이라고 사람들이 곧잘 찾아 책 사이에 꽂아 놓거나 코팅하여 책갈피로 사용하곤 한다. 어린 시절에는 왜 내 눈에만 그 행운이 보이지 않는지, 찾고 싶어도 찾아지지 않는 클로버에 속상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행운이라는 것이 이와 같은 환상과 상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여전히 그 행운에 대한 상상 속 현실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클로버에 열광하던 소녀의 시기는 이미 지난.
하지만 정인은 이런 환상과 상상을 좀 더 믿어봤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부터 악마라 자기소개한 헬렐 벤 샤하르이지만, 어찌보면 악마이기엔 고양이의 금안이 너무 반짝 빛났으니까. 그리고 정인은 이제 겨우 중2, 어린 아이니까. 그리고 이런 어린 아이는 어쨌든 어른의 보호를 받을 만하니까. 그럼에도 정인은 늘 계산을 하고 경계를 하며 따지고 든다. 학교에서 배우는 계산식이 아닌 사회와 생활에서 배운 계산식을 통해 성장한다. 그러니 클로버의 행운을 믿을 기회조차 있으려나.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오늘을 살아내고 그저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 오늘을 보낼 뿐이다.

"간단해. '만약에'라고 상상만 하면 되거든. '만약에 내가 오르톨랑을 먹을 수 있다면?' '만약에, 그 작고 무해한 멧새를 브랜디에 빠뜨려 먹으면?' 어때, 간단하지?"(46쪽)

그럼에도 '만약에'의 힘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울 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한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쉽사리 넘어가지 않으려 한다. 만약이라는 조건을 건다는 것 자체가 곧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악마의 유혹임을 익히 알고 있으며, 현실과 다른 상상으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또한 정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어른보다도 더 어른같은 이 현실감각이 어쩌면 현실을 너무나도 현실로써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정인에게, 너무도 가혹한 슬픈 현실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철없이, 정인이 환상과 상상을 믿어봤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더욱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걸 묻다니 의외인데. 소년, 난 네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거늘. 불운 앞에서 인간은 묻지. 왜 나인가? 그렇게 묻고 탐구하면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답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말하지 않을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왜 인간은 불운에게만 묻는가? 행운에겐 '왜 나인가?' 묻지 않으면서. 불운도 행운도, 그저 룰렛을 돌리면 나오는 가능성일 뿐이야. 만의 하나."(118-9쪽)

행운이 온다면 그저 그 행운이 원래부터 자신의 몫인 듯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불운은 다른 이에게 갔다면 그저 나에게 오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자신에게 왔다면 왜 나인가를 원망하게 된다. 이게 바로 '인간'의 속성이지. 헌데 왜 정인은 이런 인간의 속성에서 자신에게 온 행운을 행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운을 자신의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리고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것이 지금 우리 중2들의 세계인 것일까. 이런 건강함은, 야구의 9회말을 다시 기회삼아 일어날 수 있는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지는 힘인 것일까. 그저 놀랍기만 하다.

"천국에는 관심 없어요.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현재도 나한텐 풀기 어려운 문제인데요, 뭐. 내 삶으로 돌아갈래요.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불평하면 지옥이 된다고. 만 가지 가능성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 수는 없어요. 하지만 또 어떻게 하나도 안 따지고 살겠어요. 만의 하나, 그리고 그것 때문에 놓칠 구천구백구십구 개의 가능성 사이에서 내 식대로 방법을 찾아 볼게요."(197-8쪽)

'만의 하나' 바로 그 '만약에'의 가능성에 기대지 않고 그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구천구백구십구 개'의 삶 속으로 자신을 온전히 되돌려 놓으려는 정인의 저 다부짐이, 그저 감동이었다. 그 구천구백구십구 개의 삶 중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온전히 정인의 마음에 달려 있으며, 그 삶이 다시 정인을 힘들게 할지라도 또다시 나머지 삶 중 다른 방식을 찾아 나설 것을 알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마도 이제 정인에게 남아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응원을 제 힘에 보태어, 9회말부터 시작되는 인생에 결정타를 날리는 일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인의 9회말 삶을 나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