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도서]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커튼콜은사양할게요 #김유담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 장편소설. 창비. 2022.

성장소설이다. 꼭 어린아이가 등장해야만 성장소설인 건 아니다. 사람은 평생 성장 중이니까. 물론 나도 역시. 그래서인지 만나는 문장마다 눈길이 가고, 마주치는 인물들의 삶들에 마음이 갔다. 한바탕 요란한 폭풍 속에 남겨져 어느 한 군데 안 젖은 곳 없이 몽땅 젖었음에도, 사방이 뻥 뚫려있어 날아드는 빗줄기를 막지 못한 채 뺨을 내주고 있는 모습이 아팠다. 어디 기댈 대도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들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기대도 없이 이리저리 분주히 뛰어다니지만, 어디서도 비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삶이 이리도 잔인한 것이겠지. 인생이 이리도 팍팍한 것이겠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들이 기꺼이 받아들여야하고 또한 겪어내야만 하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 바로, 그래야 하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 이 사실이 너무도 명확해 어느 틈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이들이 어른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기를 지켜보는 것말고는. 그리고 스스로 살아내고 견딜 수 있어야만 그 다음의 삶을 살 수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그러니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 맞다.

회 맛을 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삼킬 수 있는 이가 어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만 곁에 두고 싫은 사람은 멀리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어른의 세계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44쪽)

어쩌면 조금은 씁쓸할 수도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반문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연희와 장미가 선택했던 삶을 비교하며 선택하려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것. 연희는 연희대로 장미는 장미대로, 그들은 그들의 삶을 기꺼이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일 뿐. 그러니 선택의 문제는 더욱 아니다.

"맞고 안 맞는 게 어디 있어? 좋은 기회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도전해보는 게 맞는 거지. 생활비 걱정 없이 연습에만 매달릴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있다고 생각해? 금수저 아니면 배우 지망생 할 자격도 없다는 거야? 너 말을 되게 이상하게 한다?"/"그래, 맞고 안 맞고는 난 몰라.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 넌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려고 들어?"(239쪽)
"그래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잖아. 좋아하는 일이니까 씩씩하게 참고 견디는 거고."(305쪽)

아니다. 좋아하는 일이어도 씩씩하게 참고 견디기 쉬울 수는 없다. 그걸 연희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저 장미는 좋은 것만을 하고싶어하니, 현실감각 전혀 없이 힘들고 어려운 것을 외면한다고만 생각했을 수 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쫓는 삶이라는 주변의 시선과 판단이 장미를 더욱 힘들게 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연희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너무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때였으니까. 어느 누구였어도 이들의 삶 앞을 내다보고 이들을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오직 자기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우리가 읽어온 수많은 희곡처럼 우연과 비논리가 난무하는 게 삶이라고,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질 게 아니라고, 세상은 원래 말이 안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 더 힘을 내보자고 말해줬더라면 장미는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339쪽)

세상은 이렇게나 말이 안 되는, 우연과 비논리가 난무한다는 것. 이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벌써 몸으로 충분히 익힌 사실이다. 결국 이런 세상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그런 세상을 우직하게 맞서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러니 더욱 이들의 삶, 삶을 위한 선택에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붙여 원치 않는 답을 달아줄 이유가 없다. 그저 그들이 또한 삶의 답을 스스로 찾을 때까지 지켜보기만해도-물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충분하다.

사회 초년생 때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땠을까. 물론 엉망진창이었겠지. 마치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익숙한 척 큰소리 쳤지만 속으로는 문제 상황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허둥지둥 우왕좌왕, 그리고 속으로 끙끙 앓았던 것 같다. 그 시기를 지난 후엔 누구나 다 그런 거라고, 괜찮은 거라고, 다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말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연희에게 하는 팀장의 말처럼. 그러니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의 위로는 진짜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위로는 함께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 옆, 또 그 옆에 옆에 있는 누군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문제들을 헤쳐나가기 위한 순간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감내하고 있는 누군가라는 존재 그 자체다. 아마 장미에게는 연희였을, 연희에게는 장미였을......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이 참 잔인하기도 하다.

암전, 그리고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천장에 불이 켜지면서 각자의 자리가 채워지고 새로운 일과가 시작될 것이다.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똑같은 일상이.(354쪽)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이 주는 여운이 있다. 다시 채워지는 일과와 매일 똑같은 일상처럼 결국 다시 막이 오르면, 그날의 연극을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것이겠지. 연극이 좋은 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인생이라는 연극을 다시 시작해볼 마음을 먹어볼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