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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사람은 본인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데, 그게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검소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하면 그 영향으로 '나는 부모님의 검소함을 늘 보면서 자라 장식이 없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부모님이 검소하여 어릴 때부터 레이스 달린 예쁜 원피스 한 벌 가져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녀 중 누군가는 모범생으로 자라기도 하고, 누군가는 거기에 반발하여 반항아로 자라기도 하듯이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자의 유형에 가까운데, 검소한 부모님 밑에서 억눌린 소비의 욕구로 인해 흥청망청 쓰는 어른이 되었다. 어릴 때는 가난과 검소의 경계쯤으로 살았던 것 같다. 우리집은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풍족했던 기억은 없다. 학창 시절의 나는 속옷도 헤질 때까지 입고, 평일에는 교복만 입고 다녀 주말에는 입고 다닐 변변한 외출복도 없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우리 가족이 검소해서라기보단 그냥 가난해서 그랬던 것 같다. 쓸 돈이 없으니 검소할 수밖에.

대학생이 되고,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고, 직장에 다니고 급여를 받게 되면서 나는 학창 시절 돈이 없어 억눌러져 있던 구매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 욕구는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극에 달하게 되었다. 내 월급뿐 아니라 남편의 월급까지 내 수중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택배가 끊이지 않았고, 사들이는 품목도 옷에서 식료품 같은 필수품, , 각종 생활용품까지 확장되었다.

나의 쇼핑유형은 비싸고 좋은 것을 사는 것보단 ‘1+1’ 제품, 마음에 드는 것 색깔별로 사기, 세일 할 때 쟁여놓기 같은 방식으로, 언젠간 쓰겠지 하면서 쟁여 둔 안 쓰는 싸구려 물건이 집에 넘쳐났다. 엄청나게 사대니까 엄청나게 버리기도 많이 버렸다. 책은 중고서점에 팔고, 옷이나 가방 등은 아름다운 가게에 많이 기부하여 기부 천사가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이렇게 물건들의 무덤 속에 살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데 1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4년의 시간 동안 사고, 버리고,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 대한 다큐를 보고 환경 문제가 걱정이 되고, 그렇게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자꾸 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겉모습에 너무 치장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또 새로운 옷을 사고, 집을 사서 대출을 많이 받는 바람에 허리띠 졸라매느라 조금 덜 사고.....이런 순간을 지루하게 반복해오는 과정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해 볼 마음의 준비를 이제 좀 해볼까?’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이삿짐을 싸기 전에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같은 다큐도 찾아보고 설레지 않는 물건은 몽땅 버리리라 마음을 다졌다. 택이 달린 새 옷인 채로 몇 년째 버리지 못했던 옷도 버리고, 더이상 설레지 않아서 버리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헤질 때까지 입고도 버리지 못했던 옷도 버렸다. 또 학창시절에 친구와 나눴던 교환 일기장이나 수업 시간에 손에서 손으로 전했던 쪽지들, 여행지에서의 입장권과 지도, 영수증 등 추억이 서려 있어 버리긴 아쉽지만 두 번 들여다보는 일은 없을 것 같은 보물상자 속 물건들도 마지막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 몽땅 버렸다.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양치를 하다 손에 들고 있는 양치컵을 보고 문득 그 컵을 오래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회사에서 쓰고 있는 양치컵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가지고 간 것으로 말하자면 입사 동기쯤 된다. 인천, 서울, 제주, 부산으로 직장을 많이도 옮겨 다녔는데,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 있으니 14년째 나와 함께 하는 셈이다.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설레는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지만, 매일 사용하는 이 양치컵이 그 어떤 동료나 물건보다 내 옆에 오래 남았다. 결국 내게 버려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물건은 쓸모가 있으면서 매일쓰면서 튼튼하고, 남들에게 과시하지 않아도 되는 보통의것들이었다.

내겐 버리지 못하는 물건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버려지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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