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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H2O인가?

[도서] 물은 H2O인가?

장하석 저/전대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물은 H2O’라는 사실에 명백히 도전하고 있는 제목처럼 장하석은 과학이라는 역사, 행위, 내지는 시스템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는 1장에서 3장에 걸친 18세기, 19세기 화학사와 그에 대한 도전적 평가를 통해, 4장과 5장에서 자신의 과학에 대한 철학(그러므로 과학철학)을 펼쳐 보인다. 그러니까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4장과 5장에 걸친 능동적 실재주의다원주의인 셈인데, 하지만 사람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읽을 부분은 당연히 1장에서 3장에 걸친 부분일 것이다. (나도 그런데, 그 이유 중 하나는 4장과 5장의 과학철학을 명확히 이해할 수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1장에서 3장의, 이 흥미로운 부분도 그럴진데...)

 

흔히들 화학 혁명이라는 표현을 쓴다. 셀레와 프리스틀리에 이어 산소를 발견한 라부아지에(이 책에서는 라봐지에라고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라부아지에가 편하다)에 의해 촉발된 화학 분야에서의 급격한 발달을 의미한다. 시기적으로 보자면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걸쳐 있고, 내용으로 보자면, 기존에 원소라고 알고 있던 많은 물질들이 화합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것들이 성분으로 분석되고, 또한 그런 성분(원소)들이 일관되게 부르는 체계가 확립되었다. 특히 기존에 연소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심 개념이었던 플로지스톤이라는 개념이 퇴출되었다는 점은 이 화학 혁명의 상징적인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장하석은 이 화학 혁명에 대해 명백히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사적으로 보자면 라부아지에와 그의 추종자들이 세운 개념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체계가 다른 체계를 무너뜨리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만한 과학적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플로지스톤 이론이 지금은 잘못된 개념이라고 치부되지만, 당시의 화학 현상을 설명하는 데 라부아지에의 산소 이론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점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 장하석이 온도계의 철학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설명하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여기서보다는 간략하게 설파한 바 있는데, 그걸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룰 줄을 생각도 못했었다. 인상적이었지만, 그런가보다 했을 뿐이다.

 

사실 라부아지에의 산(acid)에 대한 이론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그의 체계가 다른 체계보다 특출 난 이론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흔히 생각하듯 (화학 혁명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새로운 체계로 과학자들이 급격히 전향을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은 이 시기의 화학사(정확하게는 그 당시의 화학을 서술하는 현대의 기술)를 비판적으로 쓴다면 당연히 언급할 것으로 예측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장하석은 거기서 더 나아가 반드시 물을 H2O로 기술할 필연성은 없었다고 하고 있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 혹은 그 이후의 경쟁하던 이론들이 존재했을 때 더 일찍 발견되었을, 혹은 더 풍성하게 전개되었을 이론적, 실험적 논의들을 상상하면서, 나아가 플로지스톤 이론을 현대에 되살려야 할 필요성까지 제시하고 있다. 바로 다원주의라는 기치 아래.

 

장하석이 생각하는 과학은 절대적’, ‘궁극적’, ‘진리라는 단어들을 거부한다. 과학은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것이며, 오류 가능성을 가진 것이며, 점진적으로 알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과학에서는 어색할 수도 있는 겸손함’, ‘성숙이라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더 기억나는 것은 당연히 물이 H2O가 아닐 수도 있었다는(피터 워더스의 원소의 이름에서는 그 성질만 따지고 본다면 O2H가 맞다는 얘기도 한다. 장하석은 HO였을 가능성을 얘기하지만) 화학사에 관한 내용들이다. 나는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것을 정의하는 데 있어 순환의 오류에서 벗어나면서 기준을 만들어 간 과거의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된다. 온도계도 그렇고, 물도 그렇다. 하지만 사실은 더 깊이 읽어야 할 부분은 장하석이 과학철학자로서 과학에 대한 깊은 성찰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 제기도, 결론도 도전적이다. 그 도전성에 흠칫 놀라고,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장하석은 당연히 그런 반응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혹스러움은 그냥 거부로 끝나지 않는다. 장하석은 그걸 기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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