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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도서]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저/이충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카이사르가 동료 원로원의원들에게 무자비하게 암살당한 게 기원전 44년이니 2천년도 훌쩍 지났다. 그때 카이사르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숨은 지금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샘 킨은 몇 가지 단순한 계산을 통해(그러나 사전 지식은 있어야하는) 그가 마지막 숨 속에 포함되어 있는 기체 분자 중 일부가 지금의 우리도 폐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밝힌다(“한때 카이사르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 중 일부가 그토록 먼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 춤추고 있다”, 20). 당연히 카이사르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생물의 세포를 거쳐 갔던 기체들이 여전히 우리의 기체다. 우리를 둘러싼 기체는 우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샘 킨은 우리를 둘러싼 공기, 혹은 기체의 불멸성을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 기체에 관한 것이다. 지구상에 공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공기의 조성과 성질을 점차 알아가면서 그 공기를 인간이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그리고 그 힘을 제어하거나 혹은 과용하면서 생긴 현대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원소의 발견과 이용에 관한 이야기와 흡사한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소의 성질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체로서의 성질을 다루고 있으며, 그 기체의 성질은 예측불가능한 면이 많이 기묘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웃음가스와 관련된 마취제와 관련된 이야기라든가, 날씨를 조절하고자 하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는 기체를 우리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 또한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알려준다.

 

샘 킨은 공기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책으로 여기고 있다. 공기 속에는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질소가 있으며, 없으면 살 수 없는 산소가 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가 있으며, 어떤 다른 것과도 반응하지 않는 고귀한(nobel) 원소인 아르곤 같은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더할 나위 없는 이야기거리가 탄생한다는 것을 샘 킨은 보여준다. 가장 많이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이용할 수 없는 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하버와 보슈에 관한 이야기,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산소가 지구에 존재하면서 벌어진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 비활성 기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다, 그래서 주기율표에 하나의 기둥을 더 세우는 것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 치부하던 과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주기율표를 수정해야만 했던 이야기 등등.

 

이런 기체에 관한 내용들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친숙하게 전달한다. 이런 방식을 샘 킨 특유의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친숙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화학 관련한 책 쪽에서는) 샘 킨을 넘어서는 이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화산 폭발 경고에도 산을 버리지 않은 이라든가, 최초로 산소를 이용해서 은행털이를 시도했다 실패한 이들은 과학자가 아니지만 기체의 힘을 보여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예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냉장고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음에도 내 기억 속에는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샘 킨이 마지막 장에 배치한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다. 지구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 외계 행성을 찾아나선 인류가 어떤 기체, 공기를 맞닥뜨릴 것이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샘 킨은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우리 생애에는 물론,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 그런 살만한 외계 행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그 외계 행성을 향해 수많은 사람을 싣고 떠날 수 있을지, 혹은 그렇게 떠난 우주선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른지, 그곳이 인간이 살만한 곳일른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를, 나는 역설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지만,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보다 훨씬 가능성 있는 이야기는 이 지구를 잘 살려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무려 50억 년 후) 태양계 자체가 붕괴되어버리겠지만, 그때는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 인간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동안은 이 지구를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카이사르, 아니 그 이전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공기는 현재의 것이기도 하고, 미래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어떤 숨을 쉴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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