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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광대들이 익살을 떨고 대규모의 불꽃놀이가 파리에서 열린 지 이틀 뒤인 1863817일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앵그르와 회화에서 중요한 것인 무엇인지에 대해 평생을 두고 대립했던 들라크루아였다(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애그르는 ’, 들라크루아는 이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1831년 살롱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이 아니라 1830년 혁명이 배경이다. 이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물러나고 자유주의적인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오른다. 이 전투적이고 명예로운 작품에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여리고 얌전한 들라크루아는 난폭한 폭도들에 겁을 먹고 바리케이드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림 속에 자기를 그려넣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다. 가슴을 드러낸 자유의 여신 옆에 서 있는, 실크해트를 쓰고 손에는 라이플을 들고 있는 건장한 사람이 바로 그이다.”

-로스 킹, 파리의 심판(191)

 

 

파리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로스 킹 저/황주영 역/강유원 감수
다빈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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