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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도서] 파리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로스 킹 저/황주영 역/강유원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9세기 프랑스의 두 화가를 대비하고 있다.

에르네스트 메소니에와 에두라르 마네.

 

비교 대상이 될까 싶다. 마네야말로 인상주의의 대가로 높이 칭송받고, 그의 작품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화가다. 메소니에? 글쎄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화가다. 그래서 한 화가(마네)의 놀라운 성공과 다른 화가(메소니에)의 비참한 실패를 대비하는 책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한 화가의 놀라운 성공과 다른 화가의 반복되는 실패를 다룬 책임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앞의 화가는 메소니에이고, 뒤의 화가는 마네다. 적어도 본문만 600쪽이 넘는 이 책에서 마지막 십여 쪽 분량의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말이다.

 

시대는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쿠데타를 통해 제정을 선언하여 나폴레옹 3세로 군림하던 때이고, 장소는 많은 화가들의 성공을 향해 돌진하며 모여들었던 프랑스의 파리다. 메소니에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가장 비싸게 작품이 팔리던 작가였다. 반면 마네는 파리 근교 바티뇰의 스튜디어에서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지만 살롱전에 번번이 낙선하는 화가였다.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든가 <올랭피아>를 통해 온갖 악명(惡名)을 떨쳤고, 심사위원들이나 일부(이를테면 에밀 졸라)를 제외한 많은 미술평론가들,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주제나 소재뿐만 아니라 그는 제대로 된 윤곽을 그릴 줄도 모르는 화가였으며 그림을 대충 마무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역사화가를 그리며 유명세를 떨친 메소니에는 말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연구하여 그릴 정도로 극도의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인물을 그릴 때도 밀랍 인형을 먼저 만들었고, 전쟁화를 그리기 위해 온갖 제복이며 무기들을 다 갖췄다. 크기가 크지도 않은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 몇 년이 걸리기 일쑤였다(아이러니한 것은 마네는 사실주의 화가로, 메소니에는 그런 명칭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여기서는 파리의 심판’)는 달랐다. 메소니에가 생존에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사후 십 년쯤 지난 후에 완전히 보잘 것 없는 작가, 가치가 없는 작가로 폄훼되고 말았고, 미술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가끔 등장하는 것은 마네의 작품에 대한 방해라는 사실과는 좀 다른 얘기를 할 때뿐이다). 반면 마네는 일련의 화가들(이를테면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을 대표해서 인상주의의 왕으로 칭송받게 된다.

 

인상주의, 혹은 인상파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1874년의 살롱전에 낙선한 화가들이 전시장 근처에 따로 그림을 전시했을 때 모네의 <르아브르: 항구를 떠나는 고깃배>라는 작품이 무미건조한 제목에 르누아르가 넌더리를 내자 모네가 제목을 <인상: 해돋이>라고 다시 붙인 데서 기인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몇 가지 수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전시회는 많은 낙선화가들이 참여했지만 1874년 살롱전에 대한 낙선전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낙선전이 처음 열린 것은 1863년이었다(그래서 이 인상파 화가들을 대체로 1863세대로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보수적인 미술 정책에 따라 많은 작품들이 낙선되자 화가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해서 당국의 허가 하에 열린 것이었다. 거기에는 마네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후로 10년 간 마네의 위상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올랭피아>는 여전히 그의 스튜디어오에 잠들어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다른 작품으로 조금씩 살롱전에 입선되고 있었고, 조금씩 팔리는 작품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1874년의 전시회(“다양한 자본금의 주식회사라는 따분하고도 전혀 의외의 제목이었다)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광채와 명예가 넘치는 영광으로 남으며인상파의 거두로 소개된 셈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을 보면 왜 메소니에가 당시에 상찬받는 화가였지만 지금은 잊혀진 화가였는지, 마네가 왜 당시에는 그런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지탄받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단한 화가로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창의성의 문제인 셈이다. 미술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있는 것을 그대로 정확히 표현하는 것을 대단하게 인정하는 세태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작가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그게 바로 파리의 심판이다.

 

이것은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포함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당대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역사의 평가가 바뀌는 것을 이 사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문화적으로 우상과 같이 평가받는 이들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은 과거에 높은 칭찬을 받았다가 지금은 내팽개쳐진 인물이 또 나중에는 다시 평가될 수도 있는 일이다. 로스 킹이 표현하고 있듯이 잔인한 재평가. 언제나 이러한 잔인한 재평가 앞에 서 있는 우리들 모두는 겸손해져야 한다.

 

19세기 인상파의 대두를 도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낸 이 뛰어난 책을 읽으며 정말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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