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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르의 유령

[도서] 피오르의 유령

이르사 시귀르다르도티르 저/김진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또는 시귀르다르도티르)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아이슬란드인의 이름이다. 읽기도 힘든 이름을 나는 그냥 말할 수 있다. 이미 그녀의 작품을 네 권이나 읽었기 때문이다. 피오르의 유령은 내가 읽은 그녀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이 다섯 작품이 모두 국내에 번역된 전부다). 피오르의 유령이 다른 작품들과 다른 건 이 소설은 토라라고 하는 변호사가 주인공이 아닌 작품이란 점이다. 그녀는 토라 시리즈에서 북구(北歐)의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을 소설 속에 잘 녹여냈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피가 튀기는 잔인함은 뒤로 숨기되 분위기로 공포감을 자아낸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을 갖는다. 한 축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고립된 섬에서 공포스런 경험을 하는 세 젊은이(둘은 부부이고, 그들의 친구인 한 여자는 남편을 잃었다)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또 한 축은 아이가 실종된 후 이혼하고 지방으로 이사 온 의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황량한 섬에서는 아이의 희무끄레한 모습과 목소리가 세 젊은이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지방 도시에서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는 두 이야기는 서로 한 장씩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든 연결될 거란 이미 짐작하고 있다. 두 현장의 연결은 마지막 장에 가서야 연결되고, 그 연결은 (소설 속에서 표현하듯) 비극의 해피엔드이다.

 

마치 미스터리 영화의 장면을 마주한 관객이 그러하듯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비록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잘 아는 이도(나같이 이다) 오싹스런 느낌에 문을 함부로 열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수십 년을 건너뛰어 벌어진 사건들은 어떻게 연결될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 기이하고 공포스런 이야기 속에는 아픈 상처들이 많이 있었다. 상처를 지닌 아이에 대한 또래의 왕따, 믿었던 친구마저 다른 친구들의 협박으로 그에게 등을 돌렸을 때의 아득함, 아이를 잃어버리는 상황에서 자신의 불륜을 숨겨야만 했던 비겁함, 그리고 의사와 친구의 남편을 유혹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함 등등. 그때 만약 이랬더라면, 그랬더라도 그 다음엔 이랬더라면, 또 그랬더라도 누군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도 그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정과 후회는 부질 없는 것이지만, 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과거를 후회하며 사는 것은, 우리가 바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반추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을 그린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끝내 아쉬운 것은 유령의 존재를 현실과 관련하여 해명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자연적 현상으로 수십 년을 구천을 떠도는 유령이 존재하고, 그 존재가 살아 있는 이들에게 경고를 하고, 위협한다는 것을 작가는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수십 년을 건너뛰어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죽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그런 존재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보다 손쉬운 방법은 없다. 물론 그런 방식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사건을 설명하는 데 너무 쉬운 방법을 택한 거 아닌가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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