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그레이트 인플루엔자

[도서] 그레이트 인플루엔자

존 M. 배리 저/이한음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Great Influenza’, 바로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 부르는 1918년의 독감을 일컫는다. 감염의 규모와 사망자 수를 보면 이 독감 앞에 대문자로 ‘Great’을 붙일 만하다. 5천만 명에서 1억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당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많은 숫자다. 당시 미국의 의학교육 개혁을 이끌던 빅터 본은 단 몇 주 안에 문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런 공포를 느꼈다. 아니 문명의 종말을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목숨부터 어찌 될지 몰랐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은 여러모로 1918년의 독감과 비견된다(존 배리는 애써 스페인 독감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있다. 이 독감 스페인과 연관이 적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럼에도 스페인 독감이라고 일반적으로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일 수도 있고, 주로 미국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으므로 그럴 수도 있다). 전 세계적인 감염의 규모가 그렇고, 감염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감도 그렇다. 감염으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도 그럴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2004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이 2018년에 재출판되었고, 코로나19의 와중에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한다. 쏟아져나오는 감염질환에 관한 책들이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프랭크 스노든의 감염병과 사회와 함께 이 책이야말로 감염병을 중심으로 시대와 사회를 생각하기에 가장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프랭크 스노든의 책이 감염병과 사회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훑으면서 고민하고 있다면, 존 배리의 이 책은 1918년의 독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를 중심으로 미국 사회의 모습을 통해 그 고민을 던지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는 종적인 역사를 통해 감염병을 이해하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역사의 단면을 통해 감염병을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할 지혜를 얻고자 하고 있다.

 

존 배리는 1918년 가을을 중심으로 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의외로 그 이전 시기 미국 의과대학의 현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19세기 말 미국의 의과대학은 엉망이었다. 난립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돈만 내면 전혀 자격도 되지 않는 학생을 다 받아줬다(교수는 학생들이 낸 돈으로 월급을 받았다). 실습도 없이 졸업시키고 의사로 사회에 내보냈다. 물론 국가공인자격증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1876년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이 문을 열었다. 존스 홉킨스가 남긴 유산으로 문을 열게 된 존스 홉킨스 대학교는 미국의 다른 모든 대학교와는 다른 학교가 될 예정이었다. 독일의 기관들을 모범 삼아 대학원생의 교육과 과학의 발전을 목표로 삼았다. 의과대학은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진짜 의사, 의학 연구자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8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었을 때, 독감이 사람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을 때 존스 홉킨스의 졸업생 또는 연관된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존 배리가 존스 홉킨스 대학교 개교식을 첫머리에 소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시 미국이 당면한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어떤 이들이 있었는가, 그들의 지도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당연히 제대로 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함께 보여준다.

 

독감은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존 배리는 1918년의 독감이 캔자스주 해스켈 카운티에서 감염된 청년들이 펀스턴의 신병 기지로 입영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이 가설은 1918년의 독감이 전쟁과 어떤 관련성을 맺고 퍼져나갔는지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절한 가설이다.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그걸 공약으로 재선된 윌슨 대통령은 루시타니아호의 침몰과 짐머만의 편지에 결정적으로 여론이 바뀌며 참전하기로 결정한다. 전쟁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후 미국이라는 국가는 완전히 달라진다. 온통 전쟁 승리를 위해 모든 역량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는 물론 전쟁을 위한 군인의 징집과 전쟁 물품의 확보를 포함하지만, 전쟁을 위해서는 정보를 차단할 수 있고, 거짓을 전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쟁을 위해 모여든 청년들로부터 독감은 전파되기 시작했고, 전쟁을 위해 진실을 감추면서 독감은 더욱 맹렬한 속도로 병영으로, 민간으로 퍼져 나갔다. 전쟁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지만, 불쏘시개를 흔든 것은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미국의 지도부였다.

 

존 배리는 어떤 오판과 아집과 무지가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미국 도시의 독감 창궐을 일으키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면서 제대로 된 지도력이 세인트루이스나 샌프란시스크와 같은 도시에서 독감의 양상을 약화시켰는지를 대비시킨다. 그러면서도 더욱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독감의 정체를 파악하고, 백신과 항독소를 만들면서 독감을 정복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았던 연구자들이다. 미국 의학계의 지도적 역할을 했던 윌리엄 헨리 웰치, 그의 제자이자 록펠러 의학연구소(이는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과 더불어 미국 의학연구의 혁신을 가져온 기관이었다. 지금은 록펠러 대학교)의 초대 소장을 맡은 사이먼 플렉스너, 육군 의무감으로 헌신적인 지도력을 보여준 윌리엄 고거스, 폐렴구균 연구자로서 나중에 분자생물학의 시대를 연 발견을 한(, DNA가 유전물질임을 증명한) 오스왈드 에이버리, 독감의 혈청과 백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윌리엄 파크와 애나 웨슬 윌리엄스, 폐렴 백신을 만들고 록펠러 연구소 병원을 임상 연구의 모범 사례로 만든 루퍼스 콜 등등. 비록 그들은 당시 바이러스가 독감의 병원체라는 것을 확신하지도 못했고(많은 코흐의 사위였던 파이퍼가 발견한 헤모필루스 균, 일명 파이퍼균이 독감의 원인균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독감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하고, 항혈청을 만들어내는 등 당시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다. 그 결과 2차 감염을 줄일 수 있었고, 그것 자체가 사망률을 어느 정도는 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과 그들 제자들의 노력은 결국 독감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임을 밝혀냈고, 이후 바이러스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19 백신이 유행 후 단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이어져 온 연구의 전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연구자가 아무런 토양이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우리는 다시 비슷한 자연의 습격에 당황하고 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한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분명 배울 만한 역사, 거부해야 할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런 역사를 기술한 좋은 책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배움을 통해 늘 반성하고 후회하곤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