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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과학자가 오즈월드 에이버리다. 그는 폐렴구균을 이용하여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예순 살이 넘어서 발표한 논문에서 그의 실험은 매우 우아했고, 매우 정밀했다.

 

DNA의 구조를 알아낸 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받았으니 그 전에 이미 에이버리가 노벨상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존 배리가 그레이드 인플루엔자에서 추정하는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존 배리가 그레이드 인플루엔자에서 가장 존경스럽게 묘사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에이버리다. 가장 볼품없는 생김새를 가졌으며, 높은 직책을 가지지도 못했으나, 좁을 영역에서 깊게 우물을 판 인물이었다).

 

존 배리는 에이버리가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해내기 전에 이미 노벨상 후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미 폐렴구균 연구에 있어서 대가였으며, 폐렴구균을 대상으로 한 평생에 걸친 면역화학(immunochemistry)의 발전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 수상자로 진지하고 고려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 논문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큰 공로를 세웠으니 노벨상은 당연한 거 아니겠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사실 에이버리의 논문은 과학자 사회에서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DNA처럼 단순한 물질이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단백질이 유전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많았고, 에이버리의 실험도 뭔가 오염된 거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그렇게 우아하고 정교한 실험이 후에도 거의 없었음에도). 막스 플랑크가 말한 과학의 진보는 장례식에서라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그 상황에서 에이버리에게 노벨상을 수여하게 된다면 (논란이 있다고 여겨지던) 그의 이 논문마저도 공식적으로 승인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노벨상위원회는 염려했던 것이다. 근엄한 노벨상위원회의 위원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걸 싫어했고, 그래서 그의 연구 결과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미루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미 에이버리는 예순 살이 훌쩍 넘은 상황이었고, 1955년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알아낸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왓슨과 크릭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1962년이었다).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수여되지 않는다.

 

존 배리가 인용하고 있는 노벨상 수여 기관의 공식 역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그 연구 결과는 분명히 근본적으로 중요했지만, 노벨 위원회는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과학자에게 노벨상 수상 여부는 중요하다. 그러나 에이버리의 업적은 노벨상과는 상관 없이 불멸의 업적이 되었다.

 


 


 

 

그레이트 인플루엔자

존 M. 배리 저/이한음 역
해리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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