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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도서]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윌리엄 E. 월리스 저/이종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 사람의 일생에서 만년(晩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혈기 왕성한 청년기를 지나고 원숙한 인생의 황금기까지 지나,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가는 시기가 이른바 만년이라고 부르는 시기일 것이다. 지나온 생을 돌이켜보며 정리해나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만년이 도래했는지, 그 만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이가 일흔쯤 되었을 때 내게 얼마나 많은 날이 남아 무엇을 더 할 수 있고, 정리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나 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느닷없이 저 세상으로 떠나기도 하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의미 없는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생의 마지막을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에 만년의 업적이라고 하는 게 별로 없거나 청년기, 중년기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만년은 어떠했나.

미켈란젤로 전문가 윌리엄 월리스가 그려내고 있는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만년은 그의 청장년기와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성취가 드높았다. 당시 평균적인 생몰의 나이보다도 더 많은 70대에 교황청의 수석 건축가가 되어 성 베르로 성당의 건축을 맡고 거의 20년 동안 그 일에 매달렸으며, 또 다른 건축물들을 설계했고 조각과 그림을 완성했다(혹은 미완성인 채로 남겼다). 곧 닥쳐올 것 같은 죽음에 대한 예감 속에서, 개인적인 좌절과 상실을 딛고서 물러서지 않고 죽기 바로 전까지 최선을 다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소명 받았다고 여긴 건축가로서,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했다.

 

미켈란젤로 하면 다비드 상과 피에타와 같은 조각과 <천지창조>와 같은 그림이 떠오른다. 미켈란젤로는 초년기-조각’, ‘장년기-회화라는 공식으로 설명되곤 한다. (장년기 회화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인 시스티나성당 천장화 <천지창조>에 대해서는 로스 킹이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에서 자세히 다뤘다) (http://blog.yes24.com/document/15210406). ‘만년기-건축은 그 공식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켈란젤로는 초년기에도 그림을 그렸고, 건물을 설계하고 건설했으며, 만년기에도 뛰어난 조각과 그림을 남겼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흔에 넘은 나이에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떠맡은 것은 의외였다. 금방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대성당의 건축을 맡긴 교황 파울루스 3세에게 여러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은 수락했다. 그리고는 원래의 설계에 얽매이지 않고, 이전 건축가의 잘못된 점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설계가 바뀌지 않을 만큼의 진도를 만들어놓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건축 기간 중 20%도 채 못되는 기간 책임을 맡았던 미켈란젤로를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월리스 스스로 이 책을 쓴 이유가 예술적 성취를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만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더 중점적으로 살펴봤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의 여러 새로운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잘 아는 이에겐 이미 새로운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우선 미켈란젤로는 괴팍하여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며 혼자 지냈던 인물이 아니었다. 물론 그는 우울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로마에 있는 그의 집에는 사람들이 늘 들끓었으며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를 보좌했던 하인들이 오랫동안 그와 함께 했다는 점도 그가 생각만큼 괴팍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자신을 보좌하다 죽은 이의 미망인과 자식에게 (재혼 후에도) 오랫동안 후원했다는 점도 그렇다.

 

미켈란젤로가 남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든 자신이 귀족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변하고 다녔다는 것은 로스 킹의 책에서부터 알았다. 그래서 자신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식도 없었지만, 자신의 동생을 통해서 핏줄을 이어가는 데 무척 신경 썼다.

 

그가 연모했던 인물이 있었다는 것도 의외였다. 그는 비토리아 콜론나라고 하는 시인자 귀족 부인에게 연모를 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시집을 소중히 보관했고, 그녀에게 편지를 주고받고 시를 지어 보내며 자신의 마음을 언뜻언뜻 비치기도 했다(그렇다. 미켈란젤로는 시인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 연모와 우정은 비토리아 콜론나 갑자기 사망하면서 미켈란젤로에게 더욱 큰 좌절감을 선사했지만.

 

그가 성 베드로 성당을 맡은 이래 교황 다섯 명이 교체되면서도 여전히 수석 건축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중에는 그가 처음 그 임무를 맡을 때 탐탁치 않게 여겼던 이도 있었으나 다행스럽게(?) 교황에 오른 지 석 달 만에 죽었던 행운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만큼 미켈란젤로는 건축가로서의 역량을 의심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그가 젊었을 때 끝내 마치지 못한 건축물 때문에 괴로워했음에도 그랬다).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성당은 그가 생전에 계획한 대로 지어졌다.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고골은 <로마>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썼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장엄한 돔은 멀리 벗어날수록 더 크게 보인다. 그러다가 지평선의 둥그런 아치 위에 오로지 그 돔만 남는다. 심지어 도시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때조차도.”

 

미켈란젤로는 천재였다(에릭 와이너가 천재의 지도에서 피렌체를 이야기할 때는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대표적 천재였다). 그러나 그의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그의 천재성이라기보다는 최선을 다한 그의 마지막에 대한 깊은 경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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