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제가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쳐 유지되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마타니 아키라의 《무가와 천황》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토요토미(?臣)라는 성이 권력을 잡은 후 나중에야 바꾼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부분을 읽으면서 점점 긴장됐다. 분명 임진왜란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인가, 나오면 어떻게 서술될까? 궁금했고, 괜히 긴장됐다.
임진왜란에 대해 쓴 부분만 몇 군데 모아본다.
“1592년(분로쿠 원)으로 예정된 히데요시의 ‘고려어진(高麗御陣, 임진왜란)’의 군사 동원을 위한 기초가 되는 각 다이묘 영국(領國)의 석고(石高) 파악이 직접적인 목적이었음을 보여준다.” (141쪽)
“히데요시는 1591년 말에 관백 자리를 양자인 히데쓰구에게 넘기고 태합이라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조선의 산야를 초토화하고자 하는 무모한 침략전쟁을 감행했던 것이다.” (144쪽)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대해서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학수고대하여 얻은 아들을 잃은 것이 직접적인 ‘방아쇠’가 되었다는 점은 틀림없을 것이다.” (148쪽)
“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 군부도 무색할 정도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밖에” (149쪽)
한성과 평양을 함락하자 히데요시는 이미 도읍을 북경으로 옮기고 천황까지도 행차할 계획까지 내놓았다.
히데요시는 직접 조선에 출병할 계획을 세웠지만, 생모의 죽음으로 연기되고 천황 측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다. 이 천황 측의 반대는 “험로와 파도”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전라도 좌수사 이순신의 활약”(154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입(唐入, 실제로는 조선 침략)’은 당연히 무산될 운명이었다.” (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