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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의 역설’, 혹은 테세우스의 배란 게 있다.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그는 크레타 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배를 타고 에테네로 귀환했다(이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테세우스가 타고 온 배는 아테네인들은 오랫동안 보관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배는 당연히 썩었다. 그래서 낡은 판자를 새로운 판자로 바꾸어 넣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다보니 최종적으로는 원래 테세우스가 타고 왔던 배의 판자는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갈아 넣은 판자만이 남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이 역설이다.

 

이 역설은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 자주 인용된다. 바로 인체에 관해서다. 하루에도 수억 개의 세포가 죽고 새로이 만들어지는데, 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기관도 수명이 있어 죽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십수 년이 지나면 원래의 내 몸의 것은 하나도 남지 않고 새로이 만들어진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 몸을 내 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라는 사람의 정체성, 특히 육체적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에 관해서 영국(정확히는 스코틀랜드)의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은 남아 있는 모든 것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선은 우리 몸에 관한 것이다.

갓난아기가 어른이 되면 그 몸을 이루는 세포의 수는 50조 개가 넘으며, 250개 종류에 달하는 세포가 네 가지 기본 조직(상피 조직, 결합 조직, 근육 조직, 신경 조직)과 여러 하부 조직을 형성한다. 여러 조직들은 다시 결합해 일흔여덟 개의 정도 되는 기관을 형성하는데, 이 기관들은 주요 기관계 열세 개와 국소 기관계 일곱 개로 나뉜다. 놀랍게도 그 많은 기관 가운데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관은 다섯 개(심장, , , 콩팥, )뿐이다.” (57)

 

그녀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정기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10년 정도가 지나면 육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매력적이지만 슬프게도 틀린 이야기로 단정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아마 정설일 것이다) 우리 몸에서 절대로 교체되지 않는 세포가 네 종류 있다고 한다. 바로 신경계를 이루는 신경 세포(뉴런), 머리뼈 기저에 있는 작은 골격인 미로골낭, 치아의 법랑질, 눈의 수정체. 이것들이다. 이 가운데 수 블랙이 더 자세히 얘기하고 있는 것은 뉴런과 미로골낭인데, 왜냐하면 치아나 수정체는 현대 의학으로 통째로 교체가 가능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뉴런(신경세포)는 배아 발생 초기 몇 달 동안에 형성되어 태어날 무렵이 되면 일생 동안 가지고 갈 게 다 만들어진다고 한다. 오히려 청소년기에는 가지치기가 진행될 정도이다. 미로골낭은 내이(內耳)를 감싸고 있는 머리뼈 깊숙한 곳에 있는 주머니로 달팽이관과 반고리관이 들어 있다. 이것 역시 배아기와 태아기에 성체의 형태로 만들어진 후 다시 성장하지도 모습도 변하지 않고 일정한 상태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내 몸의 정체성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는 세포만이 내 정체성을 이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내 삶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 새로이 형성된 세포 역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고, 그것 역시 내 유전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반드시 변했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남아 있는 모든 것

수 블랙 저/김소정 역
밤의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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