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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도서] 패자의 생명사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박유미 역/장수철 감수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면 생명의 역사는 어떨까. 생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결국 진화를 이룬 자는 쫓겨나 박해받은 약자들이었다. 새로운 시대는 항상 패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108)

 

캄브리아기에 생물종의 폭발적인 증가가 일어난 시기에 단단한 껍질과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생물에 비해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어 도망 다닐 수 밖에 없던 생물이 빨리 도망가기 위해 몸속에 척삭을 발달시켰고, 결국은 이 생물들이 어류의 조상이 됨으로써 살아남았다.

 

척삭을 발달시킨 어류 중에서도 어떤 어류는 셌다. 약한 어류는 기수역으로 쫓겨났다. 기수역이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지역으로 어류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곳이다. 더 약한 물고기들을 강의 상류까지 쫓겨났는데, 그렇게 쫓겨난 어류가 작은 강과 웅덩이에서 뭍으로 나오면서 양서류의 조상이 되었다.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공룡의 시대에 작은 포유류들은 공룡을 피하기 위해 작아졌고, 작은 공룡으로부터도 피하기 위해 밤이 되어서야 활동하는 야행성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룡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청각과 후각 등의 감각 기관을 발달시켜야 했고, 그런 감각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서 뇌를 발달시켰다.

 

약한 포유류들은 다른 포유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나무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무로 달아난 포유류가 원숭이의 조상이 되었고, 그중에서 또 약했던 원숭이 종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두 발로 서야만 했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도구를 쓰게 되었고, 불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의 패자의 생명사는 굳이 패자들의 역사, 혹은 성공사라고 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공생을 통한 진핵생물의 탄생에서부터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식물 세포의 전략, 산소가 대기에 뿜어져 나왔을 때의 세균의 대응, 자손을 남기기 위해 죽음과 성을 발명한 것 등등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생명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반드시 그들이 패자라고 할 수 없는 게, 결국은 성공한 자들이 살아남았거나, 혹은 살아남아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급변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은 것은 이전의 환경에서 도망다녀야만 했던 생물들인데, 사실은 그중에서도 일부만 성공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패자가 성공했다기보다는, 패자 중에서 성공한 생물이 나왔다라고 해야 옳은 말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의 성공이 너무도 적절해서 지금까지도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는 사실은(이를테면 상어라든가, 바퀴벌레, 흰개미, 투구게, 앵무조개 같은 것들) ‘패자의 궁극적인 승리라는 일반화를 머쓱하게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렇게 쓴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생명의 역사를 탐구할 때 늘 성공적인 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다음 시대에 새로운 모습의, 새로운 기능의 생물로 진화한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매우 불확실한 것이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바로 내가, 우리가 있는 것이다. 생명의 미래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에 대해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 이유다.

 

저자가 식물학이 전공이었던 만큼, 식물의 진화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다루고 있고, 내가 식물학을 잘 모르는 만큼 다른 부분보다 배운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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